[베이스볼 비키니]김응용의 지명타자, 염경엽의 지명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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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지용규’가 문제였습니다. 지용규는 한화 팬들이 ‘지명타자 이용규’를 줄여서 부르는 말. 올 시즌 한화 지명타자를 맡은 이용규(29)는 16일 경기부터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고, 27일에는 아예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습니다.

이용규가 선발 지명타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 한화 타선은 팀 타율 0.325로 삼성(0.328)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한화와 계약할 때만 해도 대대적인 환영을 받던 선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사실 ‘지용규’라는 비판이 향하는 곳은 한화 김응용 감독입니다. 김 감독이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수비가 어려운 선수를 자꾸 지명타자로 내보내는 걸 문제 삼고 있는 거니까요. 김 감독은 15일까지 치른 95경기 중 86경기(90.5%)에 이용규를 지명타자로 출장시켰습니다. NC 이호준(95.3%), 두산 홍성흔(94.1%), 삼성 이승엽(93.2%) 같은 전문 지명타자 선수 수준입니다.

원래 이용규는 재활 문제로 빨라야 5월에 복귀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개막전부터 경기를 뛰었습니다. 그 탓에 올해는 사실상 수비하기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타격이 좋았던 것도 아닙니다. 지명타자는 수비보다 방망이가 뛰어난 선수들이 맡는 자리. 하지만 한화는 넥센과 함께 팀 평균 OPS(출루율+장타력)보다 선발 지명타자 OPS가 낮은 팀입니다. 지명타자가 오히려 팀 공격력을 깎아 먹은 겁니다.

넥센은 지명타자 공격력이 팀 타격보다 가장 처지는 팀이지만 한화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넥센은 9개 구단 최다인 12명을 지명타자로 기용했습니다. 지명타자를 ‘체(體)테크’ 목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장기 레이스에서는 선수들 체력 안배가 꼭 필요하다”며 “(강)정호가 휴식이 필요하면 (김)민성이를 유격수로 기용하고 정호가 지명타자로 나오는 식으로 라인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넥센은 주전 선수가 지명타자로 나왔을 때 대신 선발로 나온 선수가 어떤 성적을 올렸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넥센에서는 이성열(30)이 지명타자로 가장 많은 경기(28경기)에 나왔는데요, 다른 외야수 대신 우익수 수비를 볼 때는 OPS 0.894를 쳤습니다. 이성열보다 한 경기 적게 지명타자로 나온 윤석민(29)은 1, 3루수로 나왔을 때 0.917로 더 좋았고요. 염 감독 의도가 맞아떨어졌던 겁니다.

거꾸로 한화는 김 감독이 이용규를 고집하는 바람에 숨통이 막혔습니다. 이용규에 이어 16일부터 지명타자 자리를 꿰찬 김태완(30)은 그 전까지 1루수로 OPS 1.198을 쳤지만 김태균(32)을 넘어서지 못해 출장 기회를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거꾸로 지난해 30경기에서 지명타자로 뛰었던 1루수 김태균은 지용규 탓에 체력 안배에 어려움을 겪었죠. 또 수비가 썩 뛰어난 편이 아닌 외야수 최진행(29)도 포지션이 좌익수로 고정되면서 전체적으로 외야 수비가 헐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지용규는 확실히 득보다 실이 더 컸던 겁니다.

메이저리그는 어떨까요.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한 아메리칸리그 15개 팀은 현재까지 평균 13.2명을 지명타자로 기용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지명타자 돌려쓰기’가 대세로 굳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김 감독이 21세기 야구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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