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아경기 D-21]서해 건너온 핑퐁소녀 “땀은 피보다 진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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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출신 여자탁구대표 전지희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해 태극마크를 단 전지희가 인천 아시아경기 탁구에서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해 태극마크를 단 전지희가 인천 아시아경기 탁구에서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중국 청소년 탁구 대표선수 톈민웨이는 잘나가던 선수였다. 초등학교 탁구코치인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 때부터 탁구채를 잡았다. 뛰어난 실력에 중국 탁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 꼽혔다. 2007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등록 선수만 3000만 명인 중국 탁구에서 성인 대표팀으로 올라서기는 힘들었다. 몇 차례의 대표선발전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탁구 하나에 인생을 걸었던 톈민웨이에게는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2009년 어느 날 한국에서 한 탁구 감독이 찾아왔다. 포스코에너지 창단을 앞두고 중국에서 새 선수를 발굴하려던 김형석 여자탁구대표팀 감독이었다. 중국 귀화선수인 당예서(33)와 석하정(29·대한항공)을 발굴한 주인공이 김 감독이다. 톈민웨이는 한국에서 탁구를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김 감독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였지만 돌아온 대답은 “2% 부족한 것 같다”였다.

톈민웨이는 한국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 감독에게 한국에서 일주일만 훈련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감독은 강원 횡성 전지훈련에 톈민웨이를 초청했다. 톈민웨이는 일주일 동안의 훈련 내내 체육관이 떠나갈 듯한 파이팅과 성실한 자세로 결국 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 감독은 “저런 마음가짐이라면 기술이 부족해도 언젠가는 훌륭한 선수가 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톈민웨이는 2011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리고 올해 꿈에도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톈민웨이는 새로 지은 한국 이름도 얻었다. 전지희(22·포스코에너지). 그의 한국 이름은 ‘희망을 알다(知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세계 랭킹 23위 전지희는 인천 아시아경기에 개인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에 출전해 메달을 노리고 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탁구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석하정 이후 귀화 선수로는 두 번째 아시아경기 출전이다.

최근 그는 좋아하던 한국 드라마 시청도 과감하게 끊었다. 오로지 탁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그에게 한국 드라마는 한국어 선생님이자 타향살이를 잊게 해준 존재였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 덕분에 그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다. 그는 “‘커피 프린스 1호점’, ‘별에서 온 그대’ 등 많은 한국 드라마를 즐겨 봤다. 하지만 지금은 아시아경기에만 집중하고 싶어 태릉선수촌에 들어온 뒤 드라마는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경기에서 중국 선수들과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그와 함께 탁구를 배웠던 천멍(세계 랭킹 6위), 주위링(세계 랭킹 7위·이상 중국) 등이 이번 아시아경기에 출전한다. 그는 “나보다 잘했던 선수들이라 부담은 된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맞상대하면 질 수밖에 없다. 부담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경기에서 그의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비록 탁구를 계속 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지만 이제는 한국 선수로서 시상대에 서고 싶다는 욕심이 강하다. 그는 “항상 한국 대표이고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태극마크에 부끄럽지 않게 정말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톈민웨이’가 아닌 ‘전지희’의 당찬 각오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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