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쿠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88둥이’들은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주축 투수였던 김광현(SK)과 양현종(KIA)은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고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메이저리그 진출까지 함께 도전하고 있다. 2006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우승 멤버 중에는 두 명의 걸출한 투수가 또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이용찬은 2009년 신인왕을 품었고 두산의 든든한 마무리 투수가 됐다. 나머지 한 명의 이름은 임태훈(사진). 어느 순간부터 1군 엔트리에서 쉽게 찾을 수 없게 된 이름이다.
두산 송일수 감독은 임태훈을 1일 엔트리 확장과 함께 1군으로 불렀다. 올 시즌 1군 등판 기록은 단 1경기, 8월 21일 삼성전에서 5명의 타자를 상대로 안타 2개, 볼넷 없이 삼진 1개, 무실점을 기록했다.
임태훈이 2009년 11승 5패 4세이브 13홀드 방어율 3.06을 기록했을 때 많은 야구팬들은 두산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에이스 탄생을 기대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특례혜택도 받았다. 표현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야구인들은 과연 어느 정도 투수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더 궁금해 했다. 그러나 이후 줄곳 내리막길이었다. 2011년에는 ‘사생활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며 팀 성적 추락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큰 허리부상을 당해 ‘이제 투수로 생명이 끝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임태훈은 매년 마운드에 올랐다.
송 감독은 “임태훈이 허리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2군에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지금당장 예전처럼 긴 이닝을 던질 수는 없다. 지금은 짧은 이닝에 전력을 다하는 피칭을 할 수 있는 투수다. 앞으로 남아있는 중요한 일정에서 불펜투수로 요긴하게 기용하겠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시속 150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서 있는 스타플레이어도 아니다. 그러나 부상과 논란을 뒤로하고 어찌됐건 프로선수로 살아남았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1군에서 생존경쟁이다. 임태훈은 잘나가던 그의 시절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