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선수로 살아남은 임태훈, 1군 마운드서도 살아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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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9월 4일 06시 40분


임태훈. 스포츠동아DB
임태훈. 스포츠동아DB
2006년 쿠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88둥이’들은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주축 투수였던 김광현(SK)과 양현종(KIA)은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고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메이저리그 진출까지 함께 도전하고 있다. 2006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우승 멤버 중에는 두 명의 걸출한 투수가 또 있었다. 그 중 한 명인 이용찬은 2009년 신인왕을 품었고 두산의 든든한 마무리 투수가 됐다. 나머지 한 명의 이름은 임태훈(사진). 어느 순간부터 1군 엔트리에서 쉽게 찾을 수 없게 된 이름이다.

두산 송일수 감독은 임태훈을 1일 엔트리 확장과 함께 1군으로 불렀다. 올 시즌 1군 등판 기록은 단 1경기, 8월 21일 삼성전에서 5명의 타자를 상대로 안타 2개, 볼넷 없이 삼진 1개, 무실점을 기록했다.

임태훈이 2009년 11승 5패 4세이브 13홀드 방어율 3.06을 기록했을 때 많은 야구팬들은 두산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에이스 탄생을 기대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특례혜택도 받았다. 표현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야구인들은 과연 어느 정도 투수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더 궁금해 했다. 그러나 이후 줄곳 내리막길이었다. 2011년에는 ‘사생활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며 팀 성적 추락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큰 허리부상을 당해 ‘이제 투수로 생명이 끝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임태훈은 매년 마운드에 올랐다.

송 감독은 “임태훈이 허리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2군에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지금당장 예전처럼 긴 이닝을 던질 수는 없다. 지금은 짧은 이닝에 전력을 다하는 피칭을 할 수 있는 투수다. 앞으로 남아있는 중요한 일정에서 불펜투수로 요긴하게 기용하겠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시속 150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서 있는 스타플레이어도 아니다. 그러나 부상과 논란을 뒤로하고 어찌됐건 프로선수로 살아남았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1군에서 생존경쟁이다. 임태훈은 잘나가던 그의 시절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광주|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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