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배구대표팀의 세터 한선수(29·국방부)는 동갑내기 친구이자 대표팀의 에이스 박철우(29·삼성화재)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대표팀의 박기원 감독(63) 때문이다. 대표팀의 훈련장인 충북 진천선수촌과 각종 국제대회에서 박 감독은 ‘박철우’를 입에 달고 산다.
박 감독은 훈련 때나 경기 때 “철우. 그것밖에 못해”, “좀 더 집중해야지”, “정확하게 공을 봐야지” 등의 주문을 쏟아낸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면 망설임 없이 박철우를 벤치로 불러들인다. 한국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는 박철우로서는 박 감독의 쓴소리가 불만일 법도 하다. 하지만 박철우의 생각은 달랐다. “다 저 잘되라고 감독님이 쓴소리를 많이 하는 것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잘해야만 팀이 살아난다는 것도요.”
한국 남자배구는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12년 만의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박철우는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다. 박철우의 생각대로 박 감독의 박철우를 향한 애정과 관심은 그 누구보다 높다. 박 감독도 “박철우는 대표팀의 키 플레이어다. 고비 때 박철우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한다. 아시아경기 금메달은 박철우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박 감독은 아시아경기와 인연이 깊다. 직접 선수로 뛴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에서 센터로 맹활약하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24년 뒤인 부산 아시아경기에서는 이란 남자배구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은메달을 따냈다. 박 감독은 “금메달을 땄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박철우도 세계적인 선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7월 대표팀이 소집된 뒤 박철우는 박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부진으로 연습경기 때도 벤치를 지킬 때가 많았다. 지난달 끝난 아시아배구연맹 남자배구대회에서도 한국은 무패로 우승컵을 안았지만 박철우는 좀처럼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하며 박 감독의 애를 태웠다. 전광인(23), 서재덕(25·이상 한국전력) 등 젊은 선수들이 제 몫을 해주고 있지만 아시아경기에서는 박철우가 활약을 해줘야 한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는 박철우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박 감독은 가지고 있다. 박 감독은 “서재덕은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해주지만 아직 에이스가 아니다. 전광인도 아직 해결사로 뛰기에는 부족하다”며 “결국 아시아경기 등 중요한 경기에서는 박철우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철우는 “감독님의 기대가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컨디션이 올라올 때까지 감독님은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조언도 많이 듣고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기다림이 통했던 것일까. 아시아경기를 보름여 앞두고 박철우는 부진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박철우는 2일 핀란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튀니지와의 예선 1차전에서 24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박 감독은 “드디어 박철우가 에이스 본능을 되찾은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동메달에 그쳤던 만큼 이번 아시아경기에 나서는 박철우의 각오는 남다르다. 박철우는 “아시아경기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절실하다. 4년 전에는 병역면제 등의 문제로 다급했고 욕심만 부렸던 것 같다. 지금은 대표선수로서, 운동선수로서 명예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금메달 감독님 밑에서 금메달 선수도 나올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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