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핸드볼의 살아 있는 전설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은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기둥 김온아(26·인천시청)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뭔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막냇동생 같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임 감독은 핸드볼에서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센터백 출신이다. 김온아도 센터백이다. 팀의 공수를 조율하고 전열의 균형을 유지하는 ‘컨트롤 타워’다. 농구로 치면 ‘포인트 가드’다.
그래서 임 감독은 누구보다 김온아의 마음과 고충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단점도 너무 잘 보인다.
“내 팀 선수였다면 ‘리더’로 만들었을 거예요.”
임 감독은 늘 김온아의 적극성이 아쉽다. 김온아는 “감독님이 절 정확하게 보신다”고 인정했다. 임 감독은 “센터백은 나를 버리고 팀에 헌신하는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온아는 소극적”이라며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선수인데 안 하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임 감독에게 김온아는 대단한 후배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이후 세대교체가 시급했던 한국 여자 핸드볼에 불쑥 나타난 ‘20세’ 김온아를 임 감독은 잊지 못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된 김온아를 처음 대면한 임 감독은 김온아의 ‘핸드볼 DNA’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만약 같은 시대에 함께 운동을 했다면 “온아의 플레이를 ‘커닝’했을 것 같다”라고 칭찬했다.
“온아를 처음 보고는 ‘물건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저는 ‘여자’가 할 수 있는 핸드볼을 했거든요. 그런데 온아는 ‘남자’ 스타일의 핸드볼을 하더라고요. 그만큼 운동 신경과 감각이 대단했어요. 축구를 해도 잘할 수 있는 독특한 스텝도 가졌어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해요.”
대표팀 에이스지만 김온아는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에 그쳤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도 일본에 져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가까스로 몸을 만들어 출전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예선 첫 경기 스페인전에서 무릎이 꺾이는 중상을 입고 대회를 접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로 이어지는 ‘우생순 신화’의 주역인 임 감독으로선 김온아가 힘든 훈련의 고통을 이겨낼 ‘금빛 추억’이 없는 게 못내 안타깝고 미안하다.
특히 런던 올림픽 부상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김온아는 런던 올림픽 3, 4위전에서 대표팀이 동메달을 놓치는 순간 목발을 한 채 벤치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임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동료들한테 미안함도 있었을 테고, 올림픽에 나갈 수 없는 몸을 겨우 만들어서 출전한 올림픽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런던 올림픽에서 무릎 인대가 파열된 김온아는 다른 사람의 인대로 부상 부위를 접합하고 나사로 고정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수술한 인대 부위에 염증이 생겨 또 수술을 받았다. 정말 힘든 재활 끝에 가까스로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 김온아는 아직도 부상 두려움에 떤다.
김온아는 “요즘도 스텝을 잘못 밟으면 다치지 않을까 무섭다”며 “공백기도 오래돼 부담이 있지만 훈련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두려움을 조금씩 없애고 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의 입에서도 “부상 조심” 연발이다.
“런던 올림픽에서 다친 게 마지막 부상이면 좋겠어요. 최고의 선수지만 부상 때문에 중요한 경기에 못 나간 전례가 더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해요.”
1989년부터 2004년까지 15년간 대표 선수 생활을 한 임 감독은 2007년부터 8년째 태극 마크를 달고 있는 김온아의 ‘지금’이 핸드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임 감독은 “실책이 나오면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때이고, 스스로 더 채찍질을 해야 할 때”라며 “온아가 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더 적극적인 선수가 됐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임 감독의 애정 어린 당부에 김온아는 “핸드볼의 레전드인 감독님 말대로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을 코트에서 더 적극적으로 펼쳐 보여야겠다”고 화답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