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아경기 北응원단 파견 무산 뒤엔… 2013년 7월 ‘인공기 사건’의 앙금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1일 03시 00분


동아시아 축구대회서 무슨 일이… 北임원진, 대형 인공기 응원 시도
우리측 제지 과정서 얼굴 붉혀, 北 “존엄모독… 대회 보이콧” 펄쩍
南사과에 일단락됐지만 갈등 ‘불씨’

“남측은 우리(북한) 응원단이 응원할 공화국기(인공기)가 크다느니 작다느니 하면서 시비를 걸고…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북한 참가를 위해 7월 열린 남북 실무) 회담을 끝끝내 결렬시켰다.”

북한 올림픽위원회 손광호 부위원장이 지난달 북한 방송에 나와 한 주장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응원단을 파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10일 “7월 실무회담에서 북한 선수단 구성을 물어보면서 응원단이 대형 인공기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했더니 그 순간 회담장을 나가버렸다”고 말했다. 남북 모두 북한의 응원단 파견 철회로 이어진 회담 결렬의 핵심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인공기 크기를 둘러싼 갈등이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이 먼저 대형 인공기를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해 우려를 전한 것”이라고만 말해 왔다. 왜 먼저 대형 인공기 얘기를 꺼냈을까.

정부가 먼저 우려를 나타낸 것은 지난해 7월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당시 ‘인공기 사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보낸 응원단은 북한을 떠올리게 하는 천리마가 그려진 막대를 응원도구로 가져왔다. 정부는 ‘국민 정서’를 이유로 응원도구를 압수했다.

뒤이어 선수단으로 온 북한 임원 10여 명이 경기장의 대표팀 벤치 뒤에서 가로 3m, 세로 1m의 큰 인공기를 들고 있는 광경이 한국 측 관계자에게 목격됐다. 관계자들은 급히 이들을 둘러싸고 “골이 들어가거나 이겼을 때 외에는 인공기를 흔들지 말라”고 요구했다.

양측의 신경전이 극에 달하던 때 북한 임원들이 인공기를 들어 응원을 시도했고 한국 측 관계자가 재빨리 인공기를 낚아챘다.

북한 측은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대회를 보이콧하겠다”고 주장했다. 자칫 대형 사건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 측 관계자가 현장에서 북한 측에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인공기를 뺏긴 북한은 대회 내내 한국 응원단 ‘붉은악마’의 대형 태극기 응원, 일본 응원단의 대형 일장기 응원을 문제 삼으며 “왜 우리만 못하게 하느냐”고 한국 측에 항의했다.

북한이 올해 7월 실무회담에서 “남북 선수단이 단일팀 없이 출전하고 시상식 때도 남북 각각의 국호와 국기를 게양하겠다”고 하자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지난해 7월의 악몽이 떠올랐다. 이에 회담을 모니터링하던 청와대와 통일부가 협의 끝에 대형 인공기에 대한 우려를 북한에 전한 것이다.

이런 우려는 남북 간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한복판에 대형 인공기가 등장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북한도 예외 없이 국제관례를 준수해 참가해야 한다고 강조한 한국 정부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7월 회담에서 북한 측은 “이럴 거면 국제기구를 통해 협의하면 됐지 뭐 하러 회담하느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선수단과 응원단에 대한 ‘제반 편의’를 보장해 달라”며 체류 비용 전액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인공기를 흔들려면 남북 간 협의에 나서지 않아야 하지만 비용을 제공받기 위해선 협의에 나와야 한다는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한편 북한이 파견하겠다고 밝힌 선수단 273명 중 1진인 94명이 고려항공을 이용해 11일 평양을 출발해 같은 날 오후 7시 1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동아시아 축구대회#인공기 사건#인천아시아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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