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텍사스 감독을 지낸 토비 하라는 “야구 기록은 비키니와 같다. 야구 기록은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OPS(출루율+장타력)도 빠른 발이나 ‘클러치 능력’(찬스에 강한 능력) 같은 요소는 평가하지 못한다. 출루율과 장타력을 일대일로 더하는 게 정확한 계산법이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타율, 타점, 홈런보다는 OPS가 더 ‘섹시한’ 기록이다.
지난해 3월 OPS를 소개하는 기사에 썼던 마지막 문단입니다. 이제 TV 중계 때도 등장하기 때문에 OPS가 아주 낯선 야구팬은 그리 많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타율이 0.300이면 잘 치는 타자라는 건 알겠는데 OPS는 얼마나 돼야 잘 치는 타자인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한국 프로야구에서 타율 0.300과 엇비슷한 수준의 OPS는 0.850입니다.)
게다가 제 기사에 쓴 것처럼 출루율과 장타력을 일대일로 더하는 건 문제가 있는 셈법입니다. 규정 타석을 채우면 출루율은 보통 0.330∼0.400으로 나타나는 반면 장타력은 0.360∼0.500이기 때문입니다. 범위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채 단순히 더하다 보니 숫자가 원래 더 큰 장타력을 과대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간단한 계산법 때문에 OPS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만큼 허점도 남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야구 통계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GPA(Gross Production Average)라는 지표를 만들었습니다. GPA는 대학 학점을 뜻하는 GPA(Grade Point Average)에서 따온 표현입니다. 이 지표 계산(그래픽 참조) 때 출루율에 1.8을 곱하는 건 통계적으로 검증한 결과 메이저리그에서는 출루율이 장타력보다 80% 정도 중요하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 4로 나누는 건 그저 타율 범위로 값을 조정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게 하려는 목적입니다.
실제 기록을 보면 이렇습니다. 프로 원년(1982년) MBC 백인천(61)은 OPS 1.237을 기록했습니다. 이보다는 백인천의 그해 타율 0.412가 위대한 타자로서의 그의 존재감을 더 빨리 느끼게 해줍니다. 그해 백인천의 GPA는 0.408이었습니다. 역대 한 시즌 최고 GPA인데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으시나요.
그 다음은 ‘검은 갈매기’ 호세(49)가 2001년 롯데에서 기록한 0.400입니다. 그해 부산에 ‘호세 한의원’이 개업한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2003년 현대 심정수(39)가 기록한 3위 기록 0.395 역시 야구팬이라면 쉽게 활약을 가늠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통산 GPA에서는 11일 현재 삼성 이승엽(38)이 0.330으로 1위인데요, 통산 타율 1위 장효조(2011년 사망)의 GPA가 0.331이니 통산 기록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보기 편한데 GPA는 OPS한테 밀립니다. 제가 GPA를 처음 접했던 게 거의 10년 전이니 ‘신상’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매주 OPS 최고 타자 10명을 지면에 처음 실었던 게 1985년입니다. OPS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1970년대였으니 10여 년이 지난 뒤였죠. 그만큼 야구팬들이 기록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보수적인 겁니다. 그래도 저는 머지않아 좀 더 많은 팬들이 GPA를 받아들이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OPS보다 GPA가 더 섹시한 기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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