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kg급 결승서 설경 상대 지도승
한국 여자유도 최초 亞경기 2연패… 고질적 허리디스크 열정으로 극복
“내가 여왕이다” 한국의 정경미(왼쪽)가 22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여자 78kg급 결승에서 북한의 설경을 지도승으로 누르고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하고 있다. 정경미는 지도 1개를 받아 2개를 받은 설경을 물리쳤다. 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허리가 너무 아파 수도 없이 유도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할 수 있다’며 믿어주고 자신감을 주셨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우승을 확정한 정경미(29·하이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매트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유도 여자 대표팀 서정복 감독(60)을 끌어안았다. 울먹이며 기다리던 서 감독은 정경미를 등에 업었다. 정경미는 “예상치 못한 일이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유도 여자 대표팀의 맏언니 정경미가 ‘남북 대결’에서 승리하며 한국 여자 유도 최초로 아시아경기 2연패를 달성했다. 정경미는 22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78kg급 결승에서 ‘라이벌’ 북한의 설경(24)을 상대로 지도승을 거뒀다. 선수 수명이 짧고 세대교체가 잦은 여자 유도이기에 의미가 크다.
광저우 대회에서 70kg급 은메달을 땄던 설경은 이후 정경미와 같은 78kg급으로 체급을 올린 뒤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정상급 선수 반열에 올랐다. 덕분에 북한이 자체 선정한 ‘2013년 10대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올 7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그랑프리대회 금메달도 차지하는 등 북한 여자 유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선수다.
최근 상승세가 무서웠던 설경이지만 베테랑 정경미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지난해 4월에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대결했을 때도 패배자는 설경이었다. 정경미는 “세계선수권 우승자라 연구를 많이 했다. 한 번 이겼던 선수이기에 지면 안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시상식에서 우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는데 그래도 양보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정경미는 최근 허리디스크로 크게 고생했다. 고된 훈련 탓에 오래전부터 통증을 느껴 왔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심했다. 8개월가량 훈련을 쉬면서 “이제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지만 주변의 만류와 기대가 그를 매트에 머물게 했다.
정경미는 원래 ‘태권 소녀’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TV를 보고 멋있다고 느껴 ‘유도 소녀’로 변신했다. 그 뒤로는 한우물만 팠다. 새벽별을 보고 훈련을 시작해 한밤중까지 매트 위에서 보냈다. 영선고 3학년 때인 2003년에 출전한 모든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용인대 유도학과장이었던 정훈 교수는 “실력도 좋지만 너무 성실해 스카우트했다. 열심히 하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정경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여자 유도가 올림픽에서 8년 만에 얻은 메달이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8강전을 한판으로 이기고 4강에 오른 그는 쿠바 선수를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 패했다. 경기 도중 한쪽 눈의 콘택트렌즈가 빠지는 바람에 두 눈의 시력 차가 커진 게 발목을 잡았다. 정경미는 “올림픽이 끝난 뒤 바로 라식 수술을 해서 이제 렌즈를 끼지 않는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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