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나이인 아버지는 집에서 TV로 딸의 경기를 봤다. “경기장에는 애 엄마만 보냈다”고 했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내내 손바닥에 땀이 고였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검을 들고 피스트(펜싱경기장)를 누비는 모습에 가끔은 가슴도 벅찼다. 경기가 끝난 순간,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축하 인사였다. 아버지는 “우리 딸 펜싱하는 걸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잘 한다”며 담담하게 웃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윤지수(21·동의대)는 윤학길(53) 전 롯데 2군 감독의 딸이다. 야구선수였던 아버지는 현역시절 완투만 100번을 했던 ‘고독한 황태자’였다. 운동선수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느 날 갑자기 딸이 칼싸움을 하겠다고 나서자 당연히 뜯어 말렸다. 그러나 딸은 학교(양운중)와 체육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3년 만에 펜싱부를 재창단 시킬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딸이라서 그냥 예쁘게 키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자꾸만 고집을 피우는 겁니다. 결국 아빠가 졌죠. 나는 뭐 도와준 것도 없고 자기가 알아서 다 했어요.”
윤지수는 이번 대회 단체전을 통해 아시안게임에 처음 출전했다. 2012런던올림픽에도 대표팀 일원으로 따라 갔지만, 출전 기회는 잡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당한 우승의 주역이다. 아버지는 “단체전인데다 지수가 막내라 괜히 잘 하는 다른 선수들한테 피해주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며 “매일 다 같이 뛰는 운동(야구)만 하다가 이렇게 1대 1로 싸우는 걸 보니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래도 아버지는 들뜨지 않았다. 딸에게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자만하지 말고 겸손한 선수가 돼야 한다”는 당부를 건넸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근성의 야구선수가 검객이 된 딸에게 건넨, ‘아버지 식’ 축하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