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한국 야구는 역시 8회다. 황재균(27)이 롯데의 황재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황재균이 되는 적시타를 때렸다. 이 적시타로 대만 마운드를 지키던 뤄자런(28·EDA)이 내려가면서 대만은 필승 계투진을 모두 써버렸다. 김현수(26·두산)와 나성범(25·NC)의 연결 고리도 좋았다. 모든 게 7회말 무사 1, 3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긴 안지만(31·삼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28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아경기 야구 결승전은 점수만 보면 6-3 승리지만 중계 경험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경기였다. 팬들이 너무 당연하게 금메달을 기대해 선수들이 오히려 긴장했는지 모른다. 경기 전 류중일 감독(51)을 만났을 때도 입술이 바짝 마른 표정이었다. 류 감독은 “축구에서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금메달을 따면 본전이고, 못 따면 역적이 되는 기분이라 부담이라는 것이다.
대만에서 ‘깜짝 선발 카드’를 투입한 것도 선수들에게 영향을 줬을 것이다. 이날 선발 궈쥔린(22·대만체대)은 최고 구속이 시속 153km에 이를 정도로 빠른 공을 던지는 데다 ‘두뇌파 투수’라고 불릴 만큼 영리하기도 하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과 세이부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궈쥔린으로서는 한국 타선을 상대로 자기 몸값을 높이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마추어 선수다. 기선제압이 중요했던 이유다. 하지만 1회초 무사만루에서 점수를 못 내고, 1회말 한 점을 내주면서 경기가 꼬였다. 사실 경기 시작 전 뤼밍츠 대만 감독(50)은 쉽지 않은 승부를 점쳤다. 김광현(26·SK)을 공략하기에는 대만 타선이 약하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한국은 꺾기 어렵다”며 은메달을 목표로 했던 뤼 감독은 ‘에이스’ 후즈웨이(21·미네소타)를 이미 전날 일본과 맞붙은 준결승전 선발 투수로 투입한 상황이었다. 거꾸로 이미 목표를 이룬 만큼 부담 없이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건 대만의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한국 선수들보다 대만 선수들 플레이에서 여유가 넘쳤다.
대만은 올해 초 병역 제도를 모병제로 바꾸기로 하면서 대표 선발에 애를 먹었다. 병역 특례 제도가 사라지면서 대만프로야구연맹(CPBL)이 선수 차출을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시즌을 끝낸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이미 병역 혜택을 받아 의무 출전해야 하는 선수들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렸다. 의무 출전 선수들은 이번 아시아경기에 참여하면 의무 참가 일수에서 15일이 빠지지만, 다른 선수들은 어떤 병역 혜택을 받을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모병제 전환 이후 지원자가 너무 적어 2016년 이후로 모병제 전환을 연기한 까닭이다.
그러나 그 어떤 혜택과 무관하게 운동선수라면 경기에서 이기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다. 대만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뛰면서 자칫 ‘병역 혜택 자판기’라는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던 야구 결승전을 드라마로 만들었다. 대만 선수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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