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딸(민채, 돌 지난 아들(민준)을 둔 아빠는 대한민국 럭비국가대표다. 그의 별명도 ‘아베(아버지의 사투리)’다. 숙소에선 11명(7인제 엔트리 12명), 그라운드에선 6명의 선·후배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외롭진 않지만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 사진첩을 볼 때면 문득 올라오는 가슴 속 먹먹함까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김성수(31·한국전력·사진)에게 2014인천아시안게임은 3번째 도전이다. 2003년부터 11년째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그는 아시안게임과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은 한국럭비에 가장 큰 국제무대다. 정상권에 가장 근접한 종목이기도 하다. 15인제와 달리 7인제에선 오래 전부터 아시아의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성과가 이를 증명한다. 2002년 부산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신고한 뒤 2006년 도하대회에서 은메달, 4년 전 광저우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러나 그 자리에 김성수는 없었다. 고질인 무릎 부상으로 번번이 울었다. 도하대회 때는 처음 무릎을 다쳐 대회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광저우대회 때는 대표팀에 발탁돼 훈련을 받던 도중 무릎 부상 후유증으로 하차했다. 그렇게 아시안게임은 번번이 그를 빗겨갔다. 다시 4년이 흘렀고, 인천아시안게임을 맞았다. 럭비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3일간 열전을 치른다.
사실 이번에도 대표팀의 부름을 받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태극마크 반납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진지하게 생각해온 문제였다. 출중한 능력을 지닌 후배들에게 자리를 열어주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실업팀과 대표팀을 오가기가 어려운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음을 굳혔다. 가족에게 좀더 자랑스러운 가장, 멋진 아빠로 기억되고 싶었다. 지인들에게는 “이번이 국가대표 마지막 무대”라고 귀띔했다. 투혼을 불사르기 위해서다. 일종의 ‘배수진’이었다.
“항상 떳떳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지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의 감격을 현장에서 가족과 나누고 싶었다. 내 국가대표 경력의 정점이기도 해 뜻 깊은 대회다. 멋진 마무리,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다. 한국은 스리랑카, 대만, 레바논 등과 예선 C그룹에 편성됐다. 각조(A∼C조·12개국) 1∼2위와 성적이 좋은 3위 2개국이 8강전에 올라 자웅을 겨룬다. 다크호스 스리랑카만 조심하면 예선 통과는 큰 문제없을 전망이지만, 귀화선수 3명을 보유한 A조의 일본과 ‘럭비 종가’ 영국 유학파가 많은 B조의 홍콩은 만만치 않다.
김성수는 “아시안게임, 그것도 안방 대회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모두가 꿈꾸는 무대에서 후회 없이 제대로 뛰고 싶다. 아픈 무릎은 잊은 지 오래다. 아빠와 남편의 이름으로, 태극마크의 힘으로 한국럭비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