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서울대회 이후 ‘노골드 악몽’ 임용규 단식 포기…정현과 호흡 올인 결승서 인도 싱-미네니 조 2-0 제압
8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또 28년이 걸렸다.
‘한국테니스의 간판’ 정현(19·삼일공고)과 임용규(23·당진시청)가 29일 인천 열우물테니스경기장에서 열린 2014인천아시안게임 남자복식 결승전에서 인도의 사남 싱-사케스 미네니 조를 세트스코어 2-0(7-5 7-6)으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이날 경기는 비가 내리는 바람에 당초 경기시간보다 3시간 15분이나 늦게 시작됐다. 2세트 막판 다시 비가 쏟아지며 1시간 넘게 경기가 지연되기도 했지만 둘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2세트 타이브레이크 접전을 승리로 가져가며 이날 경기를 마무리했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노 골드(동메달만 2개)’ 부진을 딛고 2006도하아시안게임 이후 8년 만에 딴 값진 금메달이었다. 남자복식은 1986 서울아시안게임에서 김봉수-유진선 조 이후 28년 만이다.
● 임용규의 단식 포기, 복식을 얻다
한국테니스를 10여 년간 굳게 지켜왔던 이형택(38)의 빈 자리는 컸다. 이형택은 1998방콕아시안게임부터 2006도하아시안게임까지 한국의 간판으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5개를 따내며 코트를 지켜왔다. 하지만 2009년 은퇴하며 빠져나간 자리는 대체 불가처럼 보였다. 대표팀은 2010광저우대회에서 2개의 동메달에 그쳤다.
대한테니스협회는 이형택의 대표팀 복귀를 도왔다. 특히 이형택은 임용규와 호흡을 맞춘 5월 서울 오픈에서 우승하며 금메달 전략 종목으로 집중 대비를 했다. 하지만 이형택이 갈비뼈에 생긴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대회 출전을 포기하면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대표팀은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 임용규의 짝으로 정현을 선택했다. 특히 테니스대표팀 노갑택 감독은 임용규를 남자단식에 출전시키지 않고 컨디션 조절을 하며 남자복식에 대비했다. 임용규는 “4종목 모두 출전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감독님과 상의 후 복식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둘은 올 시즌 호흡이 많지 않았다. 12일 대만에서 열린 데이비스컵에서 강호 대만을 상대로 선전하며 가능성을 엿봤다. 작년 몇 차례 호흡을 맞춘 게 다였지만 둘의 기본기가 뛰어나 내심 금메달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날 결승전에서 정현은 특유의 파이팅으로 코트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임용규는 형다운 노련함과 서브 에이스로 상대의 기세를 꺾었다.
● 정현과 임용규, 차세대 이형택으로 자리매김
둘은 주니어대회부터 최고의 기량을 갖춘 유망주로 손꼽혔다. 정현은 2013윔블던주니어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차세대 이형택’으로 관심을 모았다. 9월 현재 ATP(프로남자테니스투어)랭킹 188위에 오르며 한국테니스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갖고 있다. 이형택이 보유했던 세계랭킹 36위(2007년 8월 기준)를 뛰어넘을, 그리고 이형택이 인정한 한국의 에이스로 기대를 모은다. 임용규는 2007장호배주니어대회에서 중학생 신분으로 고등학생 형들을 모두 제압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 대회 4연패를 달성한 전무후무한 선수다. 하지만 부상으로 기세가 한풀 꺾였다. 2010년 9월 발목인대가 끊어졌고, 잦은 부상으로 시름했다. 이번 대회에서 “인생의 모험을 걸어보자고 다짐했다”고 수차례 밝혔다.
그리고 이 둘은 보란 듯이 아시안게임에서 최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다. 임용규는 “아직 테니스하면 이형택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현이와 내가 더 큰 목표를 잡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당찬 각오를 드러냈다. 정현은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빛내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