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실점 행진-4강전 PK 성공 등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우승 수훈
과거엔 北 거칠게 나서 분위기 살벌… “지면 끝” 부담에 제대로 못 뛰기도
“1980년, 그러니까 열여덟 살 때 처음 북한 팀을 만났는데, 눈빛부터 살벌했어요. 어릴 때니까 표정 관리도 잘 안 되고, 긴장이 돼서 다리가 잘 안 떨어지더라고요.”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걸출한 스트라이커 출신 최순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처음으로 접한 북한 축구를 잊을 수가 없다.
1980년 쿠웨이트 아시안컵에 나선 최 부회장은 말레이시아(1골), 카타르(1골), 쿠웨이트(2골), 아랍에미리트(3골)를 상대하며 천재적인 골 감각으로 무려 7골을 터뜨리며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약관도 안 된 청년에게 4강전 남북 대결이 주는 부담감은 무척 컸다. 집요하고 악착같은 수비와 전투적인 투지에 고전했다. 그 대신 정해원(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이 극적인 동점골과 역전골을 터뜨리며 역대 최고의 남북 대결로 꼽히는 경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과거 남북 대결이 주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1978년 아시아경기 북한과의 결승전에 나섰던 김호곤 울산 현대 기술고문은 “북한에 지면 한국에서 얼마나 실망할지 떠올리다 보니 경기 전날까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중압감이 워낙 컸기 때문에 전술적인 완성도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았다. 1978년 아시아경기에서 대표팀 코치로 북한을 상대한 김정남 OB축구협회 회장은 “북한 선수들이 초반에 워낙 거칠게 나와서 선수들이 당황했다. 벤치에서도 선수들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며 “몇몇 선수들에게는 꼼꼼하게 역할 분담을 시켜 집중하도록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역대 남북 대결에서는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강심장’들이 승리를 이끌었다. 황선홍 포항 감독은 월드컵 예선과 남북통일축구 등 북한과의 굵직한 5차례 A매치에 출전해 집중 견제를 뚫고 3골을 넣었다. 황 감독이 골을 넣은 남북 대결에서는 모두 한국이 승리했다.
2일 36년 만에 아시아경기 결승전에서 벌어진 남북 대결에서도 강심장들의 활약이 빛났다. 8강 일본전과 4강전 태국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주장 장현수, 이번 대회 한국의 무실점 우승을 이끈 골키퍼 김승규 등은 북한을 상대로도 시종 자신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 저돌적인 공격을 펼친 이종호는 전반 북한 수비수를 달고 과감한 다이빙 헤딩슛을 날렸다. 남북 대결이 주는 스트레스가 과거처럼 강하지는 않아 보였다.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은 “1978년 아시아경기 때는 북한 선수들끼리 ‘동무! 동무’라고 부르는 말에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면서 “하지만 지금 한국 선수들은 워낙 프로경기 경험이 많기 때문에 어떤 상대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국민적 관심이 쏠린 경기라 부담감은 여전히 작용했다. 그 속에서 한국의 젊은 피들은 자신감으로 승리를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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