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원종현(사진)은 2014시즌을 처음 시작할 때 ‘시범경기에서라도 어떻게든 붙어있자’가 목표였다고 했습니다. 시즌을 준비하면서 1군도 아닌 시범경기에서 살아남자고 했던 선수가 이제 포스트시즌 무대에, 그것도 당당히 필승조로 서게 됐습니다. 그는 생애 첫 가을야구에 대해 “1군에 살아남은 것도 신기한데 포스트시즌은 실감이 안 난다”고 배시시 웃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원종현은 2006년 LG에 2차 2라운드(전체 11순위)로 입단했지만 2008년 경찰청 복무를 마친 직후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신인 때부터 번번이 발목을 잡았던 오른 팔꿈치가 문제였습니다. 내일 당장 뛸 구단도, 입을 유니폼도 없었지만 그는 자비를 털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기약 없는 미래를 위해 홀로 재활에 매달렸습니다.
다시 공을 던질 때까지 1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만두고 싶은 날도 많았습니다. ‘날도 추운데 운동하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침이면 지친 몸을 일으켜 매일 헬스장에 출근도장을 찍었습니다. “야구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제대로 해보지도 못 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기회를 기다리며 묵묵히 땀을 흘렸습니다.
준비한 자에게 기회는 왔습니다. 2011년 10월 전남 강진에서 열린 NC의 입단테스트를 통해 프로유니폼을 다시 입었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련은 계속됐습니다. NC 관계자는 “아마 지금 1군 선수 중에 2, 3군까지 모두 경험한 선수는 원종현이 유일할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실제 그는 지난해까지 2년간 2군에만 뛰었던 선수였습니다. 심지어 3군까지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오버핸드스로였던 그의 구속은 140km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를 바꾼 건 NC 최일언 투수코치의 조언이었습니다. 최 코치의 말대로 팔각도를 스리쿼터형으로 바꾸자 마치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인도 아니고, 수술까지 한 선수의 구속이 7∼8km나 올라갔습니다.
시속 150km의 위력적인 공을 자유자재로 뿌리게 된 원종현은 NC 마운드의 기둥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래도 스스로는 “아직 멀었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올해 처음으로 풀타임 출장에 최다출장 2위(SK 진해수·75경기)를 기록했음에도 오랫동안 느껴온 ‘야구갈증’을 풀기엔 128경기의 정규시즌은 턱없이 모자란 모양이었습니다. “포스트시즌도 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가 던지겠다”는 그의 말에 남다른 간절함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