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말 1사 2·3루서 145km 높은 직구 통타 시즌 잠잠했던 윤석민 ‘가을 영웅’으로 탄생
역시 프로야구에서 가을은 ‘뜻밖의 영웅’이 탄생해서 더 의미 있는 계절이다.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백업 선수라 해도, 포스트시즌에 터트린 홈런 한 방이면 오랫동안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 중요한 득점 기회에 대타로 나와 극적인 역전포를 날리면 금상첨화. 넥센 윤석민(29)이 바로 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넥센의 두 번째 가을야구가 시작된 목동구장에 새로운 히어로가 탄생했다.
27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LG의 플레이오프 1차전. 1-3으로 끌려가던 넥센은 6회말 마침내 1점을 따라 붙고, 다시 1사 2·3루의 기회를 잡았다. 다음은 9번타자 포수 박동원의 차례. 이때 넥센 벤치에서 대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두산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던 윤석민이었다. 남은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게 될 중요한 기회. 윤석민은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타석에 섰다. 그리고 그가 볼카운트 2B-0S에서 LG 투수 정찬헌의 3구째 한가운데 높은 직구(145km)에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른 순간, 넥센이 기대했던 바로 그 장면이 펼쳐졌다.
타구는 하늘을 꿰뚫을 듯 힘찬 궤적을 그리더니 오른쪽 폴 안쪽으로 절묘하게 휘어 들어갔다. 단숨에 승부를 뒤집는 역전 3점홈런. 배트를 집어던지고 하얀 공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던 윤석민은 양 팔을 높이 들며 환호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듯 상기된 얼굴로 그라운드를 돌았다. 덕아웃에는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동료들이 이날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넥센은 올 시즌 그야말로 ‘영웅 군단’의 위용을 뽐냈다. 정규시즌을 온갖 기록 퍼레이드로 뜨겁게 달궜다. 20승 투수와 50홈런 타자는 물론 역대 최초의 200안타 타자까지 배출했다. 게다가 타선에 현역 최고의 1번타자와 4번타자, 그리고 역대 최고의 거포 유격수가 포진했다. 웬만한 타격성적으로는 명함도 내밀기 어려울 정도다. 윤석민도 올해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채 99경기에서 타율 0.267, 홈런 10개. 이적 당시 쏟아졌던 기대는 어느새 자취를 감춰갔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가을은 프로야구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 계절이다. 숨죽였던 윤석민이 2014년의 가을을 뜨겁게 달구는 한 방을 날렸다. 그렇게 넥센은 또 한 명의 영웅을 얻었다. 대타(大打)가 된 대타(代打) 윤석민이었다. 윤석민은 이날 데일리MVP로 뽑혀 기쁨을 두 배로 누렸다.
● 넥센 윤석민=딱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뭔가 ‘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타로 나갈 때 늘 긴장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포스트시즌인데도 크게 긴장이 되지 않았다.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팀이 이겨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