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왕국 현대 이끌던 마운드 두 영건 팀 해체 때도, 히어로즈서도 동고동락 2009년 말 장원삼 삼성행…엇갈린 길 5년 만에 목동서 만났지만 ‘우리는 적’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이다. 삼성 장원삼(31)과 넥센 오재영(29). 인연의 씨줄과 날줄로 엮인 두 좌완투수가 팀의 운명을 어깨에 걸머진 채 승부의 대척점에 마주선다. 양 팀이 1승1패로 맞선 가운데, 6일 오후 6시30분 목동구장에서 펼쳐지는 한국시리즈(KS) 3차전 선발투수로 출격한다.
오재영은 2004년 청원고를 졸업한 뒤 현대에 2차 1라운드(전체 5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을 만큼 기대주였다. 그해 10승(9패, 방어율 3.99)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첫해부터 KS 우승을 경험하는 행운도 잡았다. 당시 삼성과의 KS에서 1승2무1패로 맞선 5차전에 선발등판해 5.2이닝 1실점 호투로 팀의 승리를 이끌고 승리투수가 됐다. 얼굴에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았던 열아홉 살 투수는 투수왕국 현대의 적통을 이어갈 후보로 평가받았다.
장원삼은 마산 용마고 시절 무명투수였다. 2002년 2차지명에서도 11라운드(전체 89순위)에 가까스로 현대에 지명됐다. 그는 경성대로 우회했고, 국가대표로 성장한 뒤 2006년 현대에 입단해 오재영과 한솥밥을 먹었다. 첫해 성적은 12승10패, 방어율 2.85. 같은 해 입단해 18승을 올린 한화 고졸 괴물투수 류현진(LA 다저스)만 아니었다면 신인왕이 되고도 남을 성적이었다. 그는 현대 마운드의 마지막 황태자로 기대를 모았다.
나이는 장원삼이 두 살 위고, 프로 경력은 오재영이 2년 위다. 그러나 둘은 현대의 해체와 히어로즈 탄생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며 동고동락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운명을 겪었다.
오재영은 2004년 이후 한번도 10승 투수가 되지 못했다. 언제나 우승을 할줄 알았지만 이후 한번도 KS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 오재영도 어느덧 팀 내에서 최고참급 투수가 됐다. 이번 KS 엔트리에 포함된 투수 중 나이로 따지면 마정길(35)과 손승락(32)에 이어 넘버 3가 됐다.
장원삼은 구단 살림살이가 어려워 친정팀과 헤어지는 슬픈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2008년 말 삼성으로 트레이드됐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트레이드 승인 거부로 히어로즈에 복귀했고, 다시 1년 뒤 기어코 삼성에 트레이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장원삼은 이제 누가 뭐래도 ‘삼성맨’이다. 현대와 히어로즈에서 보낸 기간(4년)보다 삼성에서 지낸 세월(5년)이 더 많다. 현대와 히어로즈에서 한번도 KS 마운드를 밟아보지 못했지만, 삼성 이적 후 5년 연속 KS 무대에 섰다. KS 통산 3승1패, 방어율 1.87로 ‘가을 사나이’의 명성도 얻었다.
1승1패 후 3차전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 3차전에 선발등판해 승리투수(6이닝 1실점)가 되며 팀을 KS로 이끈 오재영은 “내가 여기에 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우승 반지를 갈망했다. 지난해 KS에서 두산에 2연패를 당한 뒤 3차전에 선발등판해 6.1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장원삼은 “정규시즌 우승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 4년 연속 통합우승을 놓칠 수 없다”며 우승을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커브의 오재영일까. 슬라이더의 장원삼일까. 깊어지는 가을밤, 목동구장에서 그려나갈 이들의 아트피칭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