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류현진(27·LA 다저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기자는 류현진이라는 선수를 잘못 봤다. 그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고, 같은 실수를 두 번 되풀이했다.
2년 전 이맘때 류현진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기자는 성공보다 실패를 예상했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국내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들과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 나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의 실패를 예견하는 근거는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그의 구위가 과연 세계 최고의 타자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 통할까라는 게 첫 번째였다. 한국에서 그는 최고 시속 150km를 조금 웃도는 직구를 던졌다. 그런데 메이저리그는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세계다. 수준급의 체인지업을 갖고 있었지만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이 공에 속아줄지는 미지수였다.
한국에서 류현진은 위기 때만 전력 피칭을 했다. 미국에서는 모든 공을 전력으로 던져야 할 텐데 한 번도 그렇게 해보지 않은 그의 어깨가 버텨줄지 의문이었다. 비행기 이동, 시차, 5일 로테이션, 달라진 공인구 등 그가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결과는 모든 사람이 아는 그대로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그는 14승 8패에 평균자책점 3.00을 거두며 미국 무대에 안착했다.
올해는 그가 좀 고전할 줄 알았다. 잘 모르는 투수와 타자가 만나면 투수가 유리하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파악이 끝난 2년째는 상황이 달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올 시즌 성적은 14승 7패에 평균자책점 3.38이었다.
류현진의 성공은 우리가 몰랐던(어쩌면 그 자신도 몰랐을 수 있다) 잠재력이 새로운 환경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됐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류현진이 자신을 ‘제구력 투수’로 인정했다는 점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대개 강속구의 쾌감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죽자 살자 공을 빠르게 던지려고만 한다. 류현진은 달랐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제구력으로 살아남아야 함을 자각했다. 원래 좋았던 제구지만 마음을 비우고 나니 더 좋아졌다. 구속은 더 빨라지기 힘든 게 상식이지만 그는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빠른 공을 던졌다. 올 시즌 중에는 고속 슬라이더라는 새로운 무기까지 만들어냈다.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 야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넥센 강정호(27)는 2년 전 류현진과 닮았다. 유격수 최초로 40홈런, 100타점을 기록한 그이지만 성공보다는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수비 범위가 좁고,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빠른 타구를 잡기 힘들 거라는 의견이 많다. 한 발을 들고 치는 현재 그의 타격 폼으로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을 공략하기 힘들 거라는 의견도 있다.
포지션은 달라도 류현진과 강정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강한 멘털(정신력)이 그것이다. 18일 2014 프로야구 최우수선수 시상식장에서 강정호는 “날 데려가는 팀은 행운일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는 현진이가 잘했으니 야수로는 내가 잘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무뚝뚝하게 툭 던지는 말 속에는 강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어딘지 류현진의 어투와도 비슷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강정호에 대해 “잘 버리는 선수”라고 했다. 실수는 금방 잊어버리고, 나쁜 일도 훌훌 털어버리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적응력과 친화력에 대해서도 엄지를 세웠다. 염 감독은 “다리를 들고 치는 타법을 많이 지적하는데 강정호라는 선수는 짧은 시간에 다리를 내리는 폼으로 바꿀 수 있는 선수다”라고 평가했다.
만약 도전하지 않았다면 ‘메이저리거’ 류현진은 없었다. 강정호 역시 마찬가지다. 기회는 왔고 이제는 부딪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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