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투어 상금랭킹 3위…한미일 통산 40승 미국 투어 쫓기는 골프에 지쳐 일본행 결심 김효주 펄펄 나는 모습에 옛 생각 새록새록 “더 열심히 해서 내 기록을 모두 깨라” 응원
“과거를 내려놓으니 현재를 알게 됐고,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파이널 퀸’ 신지애(26)가 돌아왔다. 한국과 미국을 거쳐 일본에 새 둥지를 튼 그녀가 연착륙에 성공하며 3번째 성공시대를 열었다. 한국과 미국에 이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평정을 노리는 신지애를 만났다.
● 첫 우승 이후 “아, 이제 됐구나”
2월 연세대학교 졸업식 이후 9개월 만에 다시 만난 신지애의 표정은 밝았다. 그녀는 “무척 편하다”며 밝게 웃었다. 신지애는 올해 JLPGA 투어에서 4승을 올렸다. 20일 현재 안선주(27), 이보미(26)에 이어 JLPGA 투어 상금랭킹 3위에 올라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만족스러운 한해였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3월 7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첫 대회를 치렀다. 공동 2위라는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다. JLPGA 투어에 쉽게 적응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후 3개월 가까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3개 대회 연속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2차례 컷 탈락의 부진을 보였다. 그 사이 안선주와 이보미는 2승씩 기록하며 순항해 신지애와 대조를 보였다. 신지애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신지애는 골프선수로서 많은 것을 이뤘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해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 거둔 우승만 40승이다. 2009년에는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옛 영광은 새로운 출발대에 선 그녀에게 짐이 됐다. 일본으로 옮기면서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억압하면서 생각지 못한 부진을 겪게 됐다.
신지애는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버리는 게 쉽지 않았다. 과거의 성적에 연연하다보니 자꾸 (우승을) 쫓아가게 됐고, 그만큼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 더 힘들게 했다”며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미국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본에서 다시 생각하고 되찾게 됐다”고 밝혔다.
6월 니치레이 레이디스오픈에서 기다렸던 첫 우승이 터졌다. 2013년 1월 호주여자오픈 이후 1년 5개월 만에 맛보는 우승이었다.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예전의 내 모습을 찾아갔다. 우승했을 때 ‘아, 이제 됐구나. 우승이라는 게 이렇게 힘들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승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아직은 할 수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기뻤다.”
● “효주야, 내 기록을 모두 깨라”
“1월 초 미국 LPGA 투어 시드를 반납하겠다는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는 중에도 미련은 조금 남아있었다. 그런데 편지를 보내고 난 뒤에 모든 미련도 함께 날려버렸다. 그것으로 미국 LPGA 투어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접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신지애는 왜 미국이 아닌 일본을 선택했을까. 신지애의 대답은 명료했다. “미국에선 쫓기는 골프를 했다. 매주 4일씩 경기하면서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그럴수록 여유가 없어졌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생각했던 골프가 아닌 다른 골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골프에 지쳐갔고, 골프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통해 보상을 받으려 했다. 자연스럽게 골프에 대한 집중력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신지애는 몇 번이고 일본으로 오게 된 것은 잘한 선택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내 골프를 되찾은 게 가장 기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신지애는 올 들어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김효주(19·롯데)의 등장도 그 중 하나다. 자신이 갖고 있던 기록을 하나씩 갈아 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김효주는 올해 상금 12억원을 벌어 신지애가 갖고 있던 한 시즌 최다 상금(2008년 7억6518만원) 기록을 깼다. “솔직히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김)효주가 펄펄 나는 모습을 보면서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내가 이런 기록들을 갖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다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신지애는 김효주를 응원했다. 그녀는 “얼마 전 효주와 문자를 나누던 중 ‘효주야, 더 열심히 해서 내 기록을 모두 깨라’라고 응원했다. 기록이라는 건 깨야 한다. 나도 그랬으니까…”라며 뿌듯해했다.
신지애는 벌써 2015년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한국과 미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상금왕을 해보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는 적응하고 나를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했다. 올해 두 가지를 모두 해결했다. 내년에는 더 공격적으로 달려보겠다. 한 번 더 전력질주를 해보고 싶다”며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