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하여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주변인(周邊人)의 뜻입니다.
올해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후보 명단을 받아보고 이 낱말이 생각났습니다. SK 이재원(26·사진) 때문입니다. 명단을 전한 e메일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이재원이 포수와 지명타자 중 어떤 포지션으로 후보에 올랐을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에도 없더군요. 출장 경기 제한 생각을 못했던 겁니다.
골든글러브 후보에 이름을 올리려면 해당 포지션으로 85경기(올해 기준) 이상 뛰어야 합니다. 이재원은 총 120경기에 나섰지만 포수 마스크를 쓴 건 중간에 들어간 경기를 포함해도 61경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명타자는 출장 기준이 다릅니다. 총 85경기 이상 출전해야 하는 건 같지만 최다 출장 포지션이 지명타자면 됩니다. 이재원은 지명타자로 58경기를 뛰어 포수보다 3경기가 적습니다.
이 탓에 이재원은 타율 0.337(11위), 12홈런(공동 34위), 83타점(18위)을 기록하고도 올해 골든글러브 투표에서 단 한 표도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올해 골든글러브 후보 중 야수가 37명인 걸 감안하면 이재원에게는 확실히 아쉬운 상황이죠. 특히 주(主) 포지션이 포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투수를 제외하면 수비 부담이 제일 큰 포수는 타격 성적은 가장 나쁜 포지션입니다. 올해 9개 구단 포수들의 평균 OPS(출루율+장타력)는 0.677입니다. 올해 전체 경기 선발 타순의 평균과 비교하면 9번 타자(0.676)와 제일 비슷한 기록입니다. 이재원이 선발 포수로 출전했을 때의 OPS는 0.862입니다. 9개 구단 1번 타자의 평균 OPS와 같습니다.
지명타자 쪽 기록을 훑어봐도 다른 선수들에게 별로 뒤질 게 없습니다. 이재원은 선발 지명타자로 나섰을 때 OPS 0.982를 기록했습니다. 지명타자 부문 후보 KIA 나지완(0.963), 삼성 이승엽(0.914), 두산 홍성흔(0.904·이상 지명타자 출장 기준) 모두에게 앞서는 기록입니다. 시즌 초반처럼 계속 지명타자로 출전했다면 충분히 골든글러브를 다툴 만한 성적입니다. 그렇다고 이재원을 계속 지명타자로 고정시키는 게 나았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웹툰 ‘미생’에는 “우연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 우연은 기대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끝난 사람에게 오는 선물 같은 것”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만약 출전 경기만 잘 조절했다면 이재원에게 골든글러브 수상이라는 우연이 찾아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이재원이 포수로서 준비가 끝났다고 보장해주는 상징은 아닐 겁니다. 같은 만화 대사처럼 “기초 없이 이룬 성취는 단계를 오르는 게 아니라 성취 후 다시 바닥으로 돌아오는 법”일 테니까요. 주변인은 성장기에 있는 사춘기 시절을 뜻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SK 팬 여러분도 “KBO에서 정한 출장 경기 기준이 이상하다”고 너무 불평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오히려 이번 기회를 약으로 삼으라고 선수에게 기를 불어넣어주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영 억울하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지난해 이재원이 연봉 7500만 원에 계약할 때 그 100배(총액 기준)를 받기로 한 포수 역시 이번 골든글러브 후보 명단에 이름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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