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나를 안 뽑은 히딩크 감독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만든 은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8일 03시 00분


[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31> 프로축구 전북 라이언 킹 이동국

프로축구 전북 이동국(35)은 요즘 상복이 터졌다. 1일 K리그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은 뒤 2일 선수들이 직접 선정한 동아스포츠대상에서 올해의 선수에 뽑힌 것이다. 그는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13골(1골 차 득점 2위)과 6도움으로 전북의 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한때 앙드레 김 패션쇼 모델로 나설 정도였던 그는 턱시도 차림도 퍽 어울리는 축구선수다.

개인적으로는 지난달 14일 다섯 번째 아이를 얻었다. 축구장 안팎에서 모두 ‘골든 골’을 터뜨린 이동국을 시즌 종료 직전인 지난달 말 연고지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종아리 부상으로 재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 약속 장소는 전북의 클럽하우스였으나 돌연 장소를 바꿨다. 훈련에 열중하는 다른 선수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동료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다.

○ 운동장에서는 늘 청춘


30대 중반에 접어든 이동국은 여전히 국내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는 “경기 직전 2, 3초 동안 내가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그런 설렘이 사라지면 은퇴해야 한다”고 했다. 축구공을 향한 식을 줄 모르는 이런 열정이야말로 운동장을 지키는 원동력이다.

“서른을 넘기면서 오히려 훈련량이 늘었다. 학창 시절처럼 하루 네 번씩 운동을 했다. 부상을 막으려고 보강 운동에도 매달렸다. 컨디션이 아무리 나빠도 평균적인 경기력을 발휘하려 하다 보니 기복이 줄었다.” 주장 완장을 차고 있다는 책임감도 컸다. “약 먹고 참아가며 뛰었다. 올해 초 새끼발가락이 골절됐을 때는 10mm 큰 신발을 신고 출전했다.”

그는 지도자, 구단,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2008년 성남에서 부진을 겪던 이동국을 영입한 뒤 세 차례 우승을 엮어냈다. 이동국을 친근하게 “아저씨”라고 부르라는 최 감독에 대해선 “선수들의 동기 유발을 잘 시킨다. 감독님 믿음에 보답하려고 더 뛰게 됐다. 힘들 때도 여유 있고 유머를 잃지 않으신다. 그런 모습을 배우고 싶은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요즘 후배들은 내가 20대였을 때와 완전 다르다. 일찍부터 해외 축구를 접하고 뚜렷한 목표의식과 플랜이 있다. 내가 배우는 부분이 많다. 전북 구단의 투자도 K리그 최고 수준이다. 선수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최첨단 의료시설로 회복이 빨라졌다.”

○ 비운도 나를 키웠다


이동국은 월드컵과 철저하게 인연이 없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네덜란드와의 조별리그 2차전 때 잠시 뛰고 금세 사라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낙점을 받지 못해 출전조차 못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절정의 컨디션을 보였지만 개막 3개월 전 불의의 부상을 입었다. 곡절 많은 월드컵 도전사를 떠올리던 이동국의 표정에서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취미로 골프를 즐기며 싱글도 몇 번 쳐봤다는 이동국에게 불쑥 축구장에서 멀리건(잘못 쳤을 때 타수에 포함되지 않고 더 칠 수 있는 것)을 받을 수 있다면 어느 때 쓰고 싶은지 물었다. 지난 삶에서 제일 아쉬웠던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2년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틀렸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독일 월드컵 때로 돌아가고 싶다. 안 다쳤다면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는데 참 안타까웠다.” 한일 월드컵 때의 아픈 기억도 떠올렸다. “대표에서 탈락한 뒤 2주 동안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셨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셨다. 비참한 기분으로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는데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훈련하는 장면을 봤다.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능력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았구나 하는 반성과 후회가 컸다. 군대 들어갈 때 주위에서 이동국은 다 끝났다고 했는데 박수 받으며 나왔다. 나를 안 뽑아준 히딩크 감독은 새로운 이동국을 만든 은인이다.”

한때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축구 선수로 유명했던 그는 지난해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는 자전적 에세이집을 내놓았다. 부제는 ‘라이언 킹 이동국, 90분 축구 드라마는 이제부터 시작이다’였다. 이동국은 “포항이 고향이고 포철공고를 나왔다. 철은 오랜 시간 두드려야 단단해진다”며 미소를 지었다.

○ 다둥이 아빠


이동국은 2005년 미스코리아 출신 이수진 씨와 결혼해 5자녀를 뒀다. 2007년 딸 쌍둥이(재시, 재아)를 낳은 뒤 2013년 다시 딸 쌍둥이(설아, 수아)를 봤다. 겹 쌍둥이에 이어 ‘대박’이라는 태명을 가진 아들이 태어나면서 주위의 부러움을 한껏 샀다. 아이들을 보면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은 이동국은 “이번에 다섯 번째 아이까지 모두 제왕절개로 낳았기에 향후 여섯째까지는 힘들다”며 웃었다.

이동국은 가장으로서 각별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애와 둘째는 아빠가 박수 받는 걸 보면 좋아한다. 내가 못하면 가족 모두가 욕먹을 수 있다.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려고 더 열심히 한다. 경기장에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님들의 사인 요청은 무조건 들어준다. 아이들에게 실망을 줘선 안 되기 때문이다.”

기자가 테니스 종목도 맡고 있다고 하자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둘째 재아가 테니스 선수를 하고 있는데 윔블던 같은 메이저 대회 챔피언을 꿈꾼다. 한번은 경기에 지고는 억울해하며 울더라. 승부욕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졌을 때는 어금니 깨물고 몇 천 번 스윙해야 이길 수 있다고 조언해줬다. 아빠 말 잘 이해하고 집중해서 운동하는 거 보고 기특했다.”

달달한 카페라테의 온기가 어느덧 사라질 무렵 자리를 마무리해야 했다. 이동국은 산후조리원에 있는 아내가 먹고 싶다는 생선초밥을 사갖고 가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테니스장으로 취재 올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빠 이동국은 영락없는 딸 바보였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프로축구#이동국#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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