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 박찬호처럼, 류현진처럼… 한국야구 ‘ML 상륙작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월 23일 06시 40분


박찬호-류현진(오른쪽). 사진|동아닷컴DB·스포츠동아DB
박찬호-류현진(오른쪽). 사진|동아닷컴DB·스포츠동아DB
■ 한국야구, ML이 부른다

프로야구 출신 타자 1호 강정호까지

야구계에서 가끔 듣는 말이 있다. “선수는 피가 다르다.” 특히 고시합격자에 비견되는 경쟁을 뚫은 프로야구 선수들은 자기 확신이 남다르다. 이를테면 보통사람들은 9명이 실패하면 나도 실패할 것이라 위축되는 법이지만 선수는 “9명과 달리 나는 성공한다”고 더욱 의욕을 불태운다. LA 다저스 류현진의 성공으로 이제 메이저리그는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나와 같이 뛰었던 류현진이 저렇게 하는데, 나라고 안 될 이유가 뭐냐’는 자문이 선수들의 영혼을 메이저리그로 향하게 만드는 셈이다. 이제 한국프로야구 출신 타자인 강정호까지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에 입단했다. 이제 ‘투수만 메이저리그로 갈 수 있다’는 고정관념마저 깨진 것이다.

● 박찬호로 시작된 각개격파식 제1차 ML 개척기

1994년 한양대 2학년 박찬호의 LA 다저스 입단은 한국야구사에 일대사건이었다. 박찬호는 3년 후인 1997년 풀타임 선발로 정착해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고 프리에이전트(FA) 대박(5년 총액 6500만 달러)을 따내며 텍사스로 이적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박찬호의 전성기는 한국의 외환위기와 일치했는데 이때 국민들은 박찬호의 투구를 통해 위로를 받았고, 애국심의 상징처럼 받아들였다. 박찬호의 존재 덕에 일본 노모 히데오의 활약에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었다. 박찬호의 뒤를 이어 ‘묻지마 미국’행에 뛰어든 선수들이 여기저기 나왔는데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김선우 등을 제외하면 성공 사례는 미미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프로야구는 ‘박찬호와 김병현은 특수한 존재. 다시는 박찬호 같은 빅리그 100승 투수는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외적 인식으로 받아들였다. 한국프로야구의 대스타였던 이상훈, 구대성의 도전이 굵직한 임팩트를 남지지 못하며 이런 관념은 한층 굳어졌다.

● 류현진으로 시작된 한국프로야구의 ML 2차 상륙작전

박찬호 이후 한국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에서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타자로서 추신수가 성공을 거뒀으나 박찬호처럼 마이너리그에서 만들어진 선수에 가깝다. 이승엽, 이대호마저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했다.

이렇게 한국야구와 메이저리그의 끈이 가늘어지고 있는 흐름이 2012년 11월 완전히 전복됐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고, 다저스는 무려 2573만7737달러33센트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했다. 연봉협상에서도 다저스는 6년 총액3600만 달러를 보장했다. 다저스의 모험은 류현진이 보여준 최근 2년의 안정된 활약을 통해 탁견으로 입증됐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류현진과 ‘빅3’로 거론된 KIA 윤석민, SK 김광현도 당연한 것처럼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윤석민은 볼티모어 트리플A에서 절치부심중이고, 김광현과 KIA 양현종은 2016시즌 후 FA를 통해 메이저리그 입성을 노린다. 야탑고를 졸업한 내야수 박효준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해 꿈을 키운다. 그리고 넥센 강정호가 포스팅(500만2015달러)을 통해 당당히 피츠버그와 4+1년 계약(최대 1650만 달러)을 체결 했다. 이제 메이저리그는 아득한 곳이 아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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