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K’는 영어에서 1000을 뜻한다. 영어 낱말 ‘thousand’부터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 ㎏에 쓰는 킬로(kilo)를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국 듀크대 농구부 마이크 쉬셉스키 감독(68) 별명이 ‘코치 K’인 것도 언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한글로 이름을 쓰면 어디서 K를 찾아야 할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알파벳으로 쓰면 그의 성(姓)은 ‘Krzyzewski’다. 미국인들도 발음이 어렵기 때문에 ‘코치 K’로 줄여 부르는 것이다.
쉬셉스키 감독은 26일 진정한 의미의 ‘코치 K’가 됐다. 듀크대는 이날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디비전I(1부 리그) 방문경기에서 세인트존스대를 77-68로 꺾었다. 이 승리로 쉬셉스키 감독은 NCAA 남자농구 디비전I 역사상 처음으로 1000승(308패)을 거둔 감독이 됐다. NCAA 디비전I은 한 시즌 정규리그 경기가 30경기 안팎밖에 되지 않는다. 쉬셉스키 감독은 경기 후 “나 같은 행운아는 없을 거다. 그저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다 보니 어느덧 1000번이나 이겼다”고 말했다.
쉬셉스키 감독은 1965년 모교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에서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1980년 듀크대로 옮기기 전까지 73승을 거뒀고 듀크대에서는 30승 이상을 13차례(역대 1위) 달성하며 927승을 쌓았다. 쉬셉스키는 자신이 부임하기 전까지 한번도 NCAA 정상에 서지 못했던 듀크대를 네 차례 전미 챔피언(역대 2위)으로 만들었다. 그는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아 2008 베이징,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이끌었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30)는 “대표 선수 12명 모두를 합친 것보다 쉬셉스키 감독이 미국 농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고 평했다. 제임스가 올 시즌 클리블랜드로 돌아올지 고민할 때 유일하게 조언을 구했던 인물이 쉬셉스키 감독이다.
한 시즌에 82경기를 치르는 NBA에서도 통산 1000승을 넘긴 감독은 8명밖에 되지 않는다. NBA와 정규 시즌 경기 숫자가 똑같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는 스코티 바우만 감독(82·1244승) 한 명뿐이다. 한 시즌 16경기밖에 치르지 않는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에서는 돈 슐라 감독(85)이 기록한 328승이 최다승이다.
한 시즌에 162경기를 소화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총 60명이 1000승 감독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역대 최다승은 코니 맥 감독(1862~1956)이 기록한 3731승이다. 이는 2763 경기에서 승장이 된 2위 존 맥그로우 감독(1873~1934)보다 1000승 가까이 많다. 맥 감독은 50년 동안 필라델피아(현 오클랜드) 감독을 맡았는데 그가 구단주 겸 감독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맥 감독은 생전에 “세상에 진정한 감독은 단 한명 맥그로우뿐”이라고 말했다.
한국 프로종목에서는 야구에서만 1000승 감독이 배출했다. 김응용 감독(75)이 1476승으로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2위는 1198승을 기록한 채 올해 한화로 복귀하는 김성근 감독(73)이다. 야구를 제외하고는 농구 유재학 감독이 494승으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뒀다.
한편 개인 종목에서도 1000승을 거두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메이저 대회를 기준으로 7번 이기면 우승을 차지하는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에서도 1000승을 거둔 건 지미 코너스(63·1253승), 이반 렌들(55·1071승), 로저 페데러(34· 1002승)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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