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슈틸리케-김성근… 공통점은 “수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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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를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올려놓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61·독일)은 ‘수비 축구’ 신봉자다. “공격하는 팀은 이길 수 있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할 수 있다”는 한마디에서 그의 색깔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슈틸리케 감독의 축구는 ‘늪축구’ ‘머드타카’(진흙+티키타카의 합성어)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린다. 늪축구는 우리가 시원한 공격력을 선보이진 못하지만 상대 팀도 우리 페이스에 말려 같이 헤매는 모습을 빗댄 말이다. 역대 대표팀과 견줘 그리 강하지 않은 전력으로 결승에 진출한 것만 해도 이미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축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서 수비는 공격보다 더 중요하다. 쉴 새 없이 퍽이 오가는 아이스하키는 사실은 ‘골리’(골키퍼) 놀음이다. 골을 넣은 공격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빙판에 서 있는 선수들은 골을 넣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아이스하키에서는 골리가 팀 전력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게 정설이다. 농구나 배구도 마찬가지다. 프로배구 남자부 7연패를 달성한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우리 팀의 힘은 수비와 연결의 힘”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팬들은 공을 때리는 공격수를 기억하지만 나는 공을 받아 내는 수비수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삼성화재의 팀 훈련은 지금도 수비와 공격의 비율이 7 대 3이다. 삼성화재는 올해도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스프링캠프가 한창인 프로야구 팀 가운데 가장 수비 훈련을 많이 하는 팀은 단연 한화다. 훈련량이 다른 팀에 비해 많기도 하지만 전체 훈련 가운데 수비의 비중이 가장 높은 팀 역시 한화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말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취임 일성으로 “수비가 강한 팀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곧바로 이어진 일본 마무리 훈련 때 모든 선수는 유니폼이 새까매지도록 운동장을 굴러야 했다. 이달 중순부터 시작된 스프링캠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화의 훈련 스케줄에는 ‘디펜스 데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말 그대로 수비만 하는 날이다. 이날은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 하루 종일 펑고(수비 훈련을 위해 배트로 쳐주는 공)를 받는다고 보면 된다.

▷김 감독은 ‘지지 않는 야구’를 추구한다. 2009년 쓴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에서 김 감독은 ‘이기는 야구’와 ‘지지 않는 야구’를 구분했다. 이기는 야구가 승수를 따진다면 지지 않는 야구는 패수를 따진다. 전자가 결과라면 후자는 과정을 중시한다. 실수로 상대에게 승리를 헌납하지 않는 게 지지 않는 야구의 핵심이다.

그런데 하위권에 머물렀던 최근 몇 년간 한화는 어처구니없는 수비 실책으로 승리를 넘겨준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한화는 9개 구단 중 가장 많은 113개의 팀 실책을 기록했다. 단타성 타구를 2루타로 만들어주는 등의 눈에 보이지 실책은 더 많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바로 전해인 2012년 류현진은 10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는데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 역시 수비진이었다. 한화의 수비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야구란 무엇인가’를 쓴 레너드 코페트는 ‘수비’ 편에서 “감독들은 예외 없이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막상 라인업에 선수 이름을 써넣을 때면 타선 강화에 치중한 나머지 수비의 희생을 감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수비는 타격에 비해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힘은 더 많이 든다. 아홉 번 삼진당하다 한 번 결정적인 홈런을 치면 영웅이 되지만 99번 잘 잡다가 한 번 결정적인 실책을 하면 역적이 된다. 관심받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 수비보다 공격을 선호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기 싫고, 많은 선수가 하지 않을수록 더 해야 하는 게 수비다. 신 감독은 “수비 훈련은 선수도 힘들지만 시키는 지도자도 괴롭다. 적지 않은 감독이 중간에서 선수들과 타협하고 만다. 그걸 이겨내야 강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화 선수들은 요즘 자신들이 왜 치열하게 수비와 싸워야 하는지 몸으로 깨치고 있다고 한다. SK 시절에도 김 감독으로부터 지옥의 펑고를 받았던 정근우는 “어느 순간이 되면 저절로 글러브가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올 시즌 한화 야구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역시 수비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슈틸리케#김성근#수비#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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