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 한번도 안 울어” 박지성, 백지수표도 받았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3일 18시 18분


“나는 선수 시절 한번도 울지 않았다.”

은퇴한 축구스타 박지성(34)이 최근 펴낸 자서전 ‘마이스토리’에서 밝힌 일이다. 그는 “순탄한 생활을 이어온 것은 결코 아니다. 이기고 지는 게 일상인 스포츠에서 몇 번의 패배와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몇 번인가 백지수표를 받았다고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일본 교토에서 뛰고 있을 때 국내의 K리그 팀이 보냈다고 했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로 진출한 이후에는 중동구단과 중국 쪽에서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백지수표를 보냈다고 했다. 그 때마다 그는 돈이 아닌 더 큰 꿈을 택했다고 했다. 맨유에서 퀸즈파크 레인저스(QPR)로 이적할 때도 에어아시아 항공사를 만든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가 “비행기 두 대로 시작해 지금의 항공사를 만든 것처럼 자신과 함께 QPR을 키워나가자”고 제안한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엔 야구선수가 되려고 했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부에 지원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어렵게 축구부에 들어갔으나 이번에는 축구부가 금방 해체됐다. 일부 학부모들이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며 축구부 해체를 건의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초등학교로 옮겨가 어렵게 축구를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했고 꿈이었던 고려대는 물론 다른 대학에도 못 들어가게 돼 처음 낙담했다고 했다.

어렵게 명지대에 들어간 그는 대표팀에 발탁됐을 때도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여린 사람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 승부차기에서 2번 키커로 지명되었을 때 정말 형들한테 떼라도 쓰고 싶을 만큼 하기 싫었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6년 동안 5번 연속 페널티킥에 실패했던 ‘페널티킥의 저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던 그는 어정쩡하게 공을 찼는데 오히려 스페인의 세계적인 골키퍼 카시야스가 이 공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선 채로 골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강심장으로 알고 있는 점은 오해라고 했다.

그는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았지만 자신의 무릎상태를 설명하자 홍 감독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부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문과 달리 코칭스태프로 참여해달라는 제안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현역 마지막 시즌 축구화에 자신과 아내(김민지 전 SBS 아나운서)의 이름을 새겨 넣은 축구화를 신고 뛰었다고 했다. 언론의 눈을 피해 둘만의 비밀스런 이벤트를 만들어줘 기분이 좋다며 축구화를 공개했다.

큰 위기를 겪은 적도 있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을 때는 처음으로 축구가 싫어졌다고 했다. 2003년 슬럼프를 겪을 때 홈팬들의 야유와 동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 때 그는 실패의 두려움을 던져버리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실수한 것은 잊어버리고 아주 쉬운 것이라도 잘한 것만 기억하려고 했다.

부상을 이겨낸 방식도 비슷하다. 쉬지 않고 뛰어 ‘산소탱크’로 알려진 그였지만 사실은 선수시절 대부분 부상의 통증을 참고 뛰었다고 했다. 2003년 오른 무릎 연골이 찢어질 정도로 뛰어 그 통증을 참지 못해 수술을 했고 2007년 뼈끼리 부딪쳐 무릎 연골이 아예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선수생활이 끝날 수 있던 그 때 그는 긍정의 자기최면으로 위기를 이겨냈다고 했다. 그가 한번도 울지 않은 것은 실패를 발판으로 한 긍정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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