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 전문기자의 V리그 레이더] 이정철 “할말 없다” 최고 칭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2월 4일 06시 40분


IBK기업은행이 2일 선두 도로공사의 10연승을 저지한 뒤 기뻐하고 있다. IBK의 승리에는 이정철 감독의 배려가 한몫했다. 이 감독은 작전타임 때 지친 김사니, 김희진, 박정아 등을 벤치에 앉혀 지시를 듣게 하면서 선수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성남|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IBK기업은행이 2일 선두 도로공사의 10연승을 저지한 뒤 기뻐하고 있다. IBK의 승리에는 이정철 감독의 배려가 한몫했다. 이 감독은 작전타임 때 지친 김사니, 김희진, 박정아 등을 벤치에 앉혀 지시를 듣게 하면서 선수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성남|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데스티니 없는 IBK, 도로공사 10연승 저지
김희진 “감독님께 들은 역대 최고의 칭찬”
초중고 지원방안 뒷짐 진 트라이아웃 문제


NH농협 2014∼2015 V리그 5라운드가 시작됐다. 결승점이 멀리 보이는 가운데 앞서가던 남녀 팀이 모두 주춤거렸다. 삼성화재는 1일 한국전력에 3-2로 역전패했다. 9연승의 도로공사는 2일 외국인선수 데스티니가 부상으로 빠진 IBK기업은행에 1-3으로 패했다. 삼성화재는 김명진의 부상과 이선규의 징계까지 겹쳐 발걸음이 무겁다.

상위권보다 더 뜨거운 경쟁은 포스트시즌 티켓을 놓고 벌이는 남자부 3∼5위 싸움이다. 대한항공∼한국전력∼현대캐피탈에게는 운명의 라운드다. 여자부 4위 흥국생명은 5, 8일 도로공사, IBK와의 경기에서 시즌의 운명을 건다.

● 감독은 서 있고 선수는 앉아 있었던 IBK기업은행의 벤치

2일 성남 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도로공사-IBK기업은행 경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나왔다. 2세트 테크니컬 타임아웃 때 이정철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는데 IBK의 김사니, 박정아 등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체력소모가 많은 농구에서는 감독이 앉아 있는 선수들에게 작전지시를 하지만 배구에서는 드문 장면이었다. 사연이 있었다. 데스티니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IBK선수들이 상상외의 투혼을 발휘했다. 1세트를 이기고 2세트도 모든 선수가 필사적으로 공격하고 수비하느라 코트 여기저기서 뒹굴었다. 김희진과 박정아는 데스티니 몫의 공격까지 해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30대 김사니는 오랜 랠리가 끝나면 코트에 주저앉아서 쉽게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의 몸 상태를 감안해 타임아웃 때 앉아서 자시를 들으라고 했다. 이 감독은 3세트를 이기자 큰 동작의 세리머니를 했고 4세트에서 승리를 확정한 뒤에는 2년 전 챔프전 우승 때보다도 더 큰 동작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우리 선수들이 데스티니가 빠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해서 나도 모르게 동작이 커졌다”며 기뻐했다. 이날의 수훈선수였던 김희진은 50%가 넘는 공격부담을 하느라 탈진 상태였다. 경기 뒤 어떤 칭찬을 들었냐고 하자 “‘오늘은 할 말이 없다’고 하셨다. 감독님에게 들은 역대 최고의 칭찬”이라고 했다.

● 폴리 통역사가 시즌 도중에 바뀐 까닭은?

현대건설 폴리 곁에 있던 통역사 성리사 씨가 물러나고 새로운 통역사가 왔다. 시즌 도중에 외국인선수를 담당하는 통역사가 바뀐 것은 이례적이다. 국영준 사무국장은 “올스타전 이전부터 대학원 진학을 위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혀 교체했다. 러시아어 통역을 쉽게 구하기 힘들어 폴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영어통역을 새로 정했다”고 말했다.

외국인선수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통역은 팀 전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벤치의 지시를 얼마나 정확하게 때로는 감독의 분노를 적당한 수준으로 완화시켜서 전달하느냐는 상상외로 중요하다. 낯설고 물선 땅에서 외국인선수가 구단과 동료 코칭스태프에게 가질 수 있는 불만도 가끔은 중간에서 차단하고 때로는 걸러서 전달하는 업무도 통역사가 해야 할 일이다. 이뿐만 아니다. 선수가 쉬는 날엔 숙소에서 말동무도 해주고 쇼핑 친구도 해줘야 한다. 어지간한 인내와 애정 없이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통역생활 3년이면 노벨 평화상 후보”가 된다는 우스개도 있다.

●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린 여자부 트라이아웃

지난주 여자부 트라이아웃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나간 뒤 배구 팬의 관심이 뜨거웠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수정과정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도가 원래 추구하고자 했던 목적과 실행과정이 맞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트라이아웃을 앞두고 각 구단과 현장의 감독은 승리라는 목표만 생각한다. 구단과 감독의 위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아쉽다. 한국배구연맹(KOVO)과 여자부 6개 구단이 당초 트라이아웃을 하자고 했던 이유는 외국인선수에게 들어가는 과도한 비용을 줄이고 그 돈으로 우리 선수들에게 좀더 좋은 대우를 해주고 고사상태에 있는 아마추어 유소년 팀을 지원해 배구저변을 확대하자는 기본 목표가 있었다.

이사회에서 트라이아웃과 관련한 기본방침을 확정하기에 앞서 여자부 샐러리캡 상한선과 초중고 선수들에 대한 지원방안 등의 논의도 함께 진행되어야 마땅하지만 지금 누구도 그것에 관심이 없다. 갈수록 배구 꿈나무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배구와 V리그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중요한 것은 코트에서 활약하는 우리 선수다. 그 싹을 키우기 위한 투자에 인색하면 미래도 없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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