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셔틀콕 ‘95세 키다리 아저씨’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3시 00분


요넥스코리아 김덕인 회장
용품 개선-대표팀 해외전훈 주선… 배드민턴 1980년대이후 도약 밑거름
스타 산실 원천배 대회 20회 개최

95세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덕인 요넥스코리아 회장이 라켓을 들고 직접 헤어핀 시범을 보이고 있다. 요넥스코리아 제공
95세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덕인 요넥스코리아 회장이 라켓을 들고 직접 헤어핀 시범을 보이고 있다. 요넥스코리아 제공
기자에게 펜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취재수첩에 직접 몇 자를 적었다. ‘적수성연(積水成淵).’ 한 방울의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룬다는 의미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배드민턴이 세계 정상으로 성장하는 데 헌신한 95세 노(老)회장의 지난날이 이 사자성어에 담겨 있었다. 9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김덕인 요넥스코리아 회장이다.

김 회장은 이날부터 12일까지 자신의 아호를 딴 원천배 초등학교 배드민턴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로 20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는 이용대 유연성 성지현 등 전현직 국가대표를 40명 넘게 배출했다. 고령에도 여전히 최고경영자로 현장을 지키고 있는 김 회장은 “어느새 이 대회가 약관의 나이가 됐다. 한 줌의 흙이 모여 산이 되듯 꿈나무 발굴에 작은 밑거름이라도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광복 이듬해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뒤 목포에 정착해 결혼했다. 미곡 도매상을 하던 그는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을 가 담배를 팔기도 했다. 휴전 후 서울 용산의 단칸방에서 찐빵 장사로 생계를 꾸렸다. 그의 얘기를 듣자니 영화 ‘국제시장’이 떠올랐다. 1960년대 후반 무역사업이 번창하면서 취미로 부인과 남산에서 배드민턴을 치게 된 게 셔틀콕과의 인연이었다. “배드민턴은 어디서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품질이 형편없던 배드민턴 용품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77년 동승통상(요넥스코리아의 전신)을 설립해 ‘스완’이라는 브랜드의 셔틀콕을 제조했다. 김 회장은 “당시 셔틀콕은 닭털 제품이라 선수들이 훈련하는 데 애를 먹었다. 제대로 된 용품 없이 대표팀이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본에서 기계를 주문해 9개월 만에 들여왔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이 용품 개선뿐 아니라 대표팀의 일본, 대만 전지훈련도 주선한 덕분에 한국 배드민턴은 1980년대 들어 황선애의 전영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 강호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김 회장은 배드민턴 코트의 키다리 아저씨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 중 직접 라켓을 잡고 헤어핀 시범까지 보인 김 회장은 “반칙을 허용하지 않는 스포츠 정신은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정직, 노력, 봉사는 내 평생 철학”이라고 했다.

고양=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배드민턴#요넥스코리아#김덕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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