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넥스코리아 김덕인 회장
용품 개선-대표팀 해외전훈 주선… 배드민턴 1980년대이후 도약 밑거름
스타 산실 원천배 대회 20회 개최
기자에게 펜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취재수첩에 직접 몇 자를 적었다. ‘적수성연(積水成淵).’ 한 방울의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룬다는 의미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배드민턴이 세계 정상으로 성장하는 데 헌신한 95세 노(老)회장의 지난날이 이 사자성어에 담겨 있었다. 9일 경기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김덕인 요넥스코리아 회장이다.
김 회장은 이날부터 12일까지 자신의 아호를 딴 원천배 초등학교 배드민턴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로 20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는 이용대 유연성 성지현 등 전현직 국가대표를 40명 넘게 배출했다. 고령에도 여전히 최고경영자로 현장을 지키고 있는 김 회장은 “어느새 이 대회가 약관의 나이가 됐다. 한 줌의 흙이 모여 산이 되듯 꿈나무 발굴에 작은 밑거름이라도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광복 이듬해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뒤 목포에 정착해 결혼했다. 미곡 도매상을 하던 그는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을 가 담배를 팔기도 했다. 휴전 후 서울 용산의 단칸방에서 찐빵 장사로 생계를 꾸렸다. 그의 얘기를 듣자니 영화 ‘국제시장’이 떠올랐다. 1960년대 후반 무역사업이 번창하면서 취미로 부인과 남산에서 배드민턴을 치게 된 게 셔틀콕과의 인연이었다. “배드민턴은 어디서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품질이 형편없던 배드민턴 용품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77년 동승통상(요넥스코리아의 전신)을 설립해 ‘스완’이라는 브랜드의 셔틀콕을 제조했다. 김 회장은 “당시 셔틀콕은 닭털 제품이라 선수들이 훈련하는 데 애를 먹었다. 제대로 된 용품 없이 대표팀이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본에서 기계를 주문해 9개월 만에 들여왔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이 용품 개선뿐 아니라 대표팀의 일본, 대만 전지훈련도 주선한 덕분에 한국 배드민턴은 1980년대 들어 황선애의 전영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 강호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김 회장은 배드민턴 코트의 키다리 아저씨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 중 직접 라켓을 잡고 헤어핀 시범까지 보인 김 회장은 “반칙을 허용하지 않는 스포츠 정신은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정직, 노력, 봉사는 내 평생 철학”이라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