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하 대한스포츠의학회장 “박태환 도핑논란, 이상한 점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5일 17시 12분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점은 말이죠….”

박원하 대한스포츠의학회장(57·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장)은 사무실 벽장을 이리 저리 살피더니 병을 하나 꺼냈다. 엄지손가락 크기였으나 그보다는 가늘어 보이는 작은 갈색 병이었다. 최근 일선 노화방지 병원에서 “박태환이 맞은 그 약”이라고 쉬쉬하며 권하고 있다는 ‘네비도’였다.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포함하고 있는 이 약은 잃어버린 남성성을 회복시켜 주는 ‘회춘’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났다. 나이든 남성들이 찾는 노화방지병원에서 인기 있는 이유다. 박 회장은 함부로 맞아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테스토스테론을 과다 투여하면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졌어요. 따라서 테스토스테론을 처방할 때는 전립선암수치검사(PSA)를 같이 해야 해요. 또 혈액의 점도를 높이기 때문에 피가 굳어지는 혈전(피떡)이 생길 수 있어요.” 그는 과거 해외 사이클 선수들이 집단 사망한 경우가 있었는데 테스토스테론 투여로 생긴 혈전이 폐나 심장에 영향을 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테스토스테론은 빠른 시간 안에 근육을 키워준다. 보디빌딩 선수들이 이 약물을 사용하다 걸리는 경우가 많다. 박 회장은 대한체육회 반도핑 책임자로 있던 2000년 대 초반 전국체전에서 보디빌딩 입상자 거의 전원을 실격시킨 적이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테스토스테론이 2~4주가 지나면 몸 안에서 빠져 나간다는 겁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도핑 테스트에서 정상수치로 나옵니다.”

바로 이 점이 완전범죄를 꿈꾸는 선수들과 도핑 감시자들간의 접전 포인트라고 박회장은 설명했다.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테스토스테론을 이용해 근육을 키워 놓고 테스토스테론이 몸에서 빠져나간 뒤에 경기에 임하는 방법을 쓴다. 테스토스테론이 빠져나가도 이미 형성된 근육으로 높은 운동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테스토스테론은 경기 기간뿐만 아니라 경기가 열리지 않을 때도 금지되는 ‘상시 금지약물’이다.

여기까지 설명한 그는 다시 네비도 제품 표지 설명을 가리켰다. ‘테스토스테론 운데카노에이트’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운데카노에이트’라는 구절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는 테스토스테론에 기름을 섞었다는 걸 뜻합니다. 이 때는 몸 안의 대사기간이 길어져 테스토스테론이 체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보통 테스토스테론의 3~5배인 10~14주까지 늘어납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박태환 선수 또는 그 누군가가 완전범죄를 꿈꿨다고 추리해 봅시다. 이 때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왜 이렇게 약효가 긴 약물을 맞았을까 하는 겁니다. 의도적으로 도핑을 회피할 목적이었다면 약효가 길어지는 네비도가 아니라 약효가 짧은 기존의 보통 테스토스테론을 맞으려고 했을 겁니다.”

박태환 같은 유명선수는 언제든지 국제수영연맹(FINA)에서 기습적으로 도핑검사를 실시한다. 도핑검사관이 들이닥쳤을 때 60분 이내에 조사에 응해야한다. 그래서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시간대별 스케줄을 대한 수영연맹에 알려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 토록 약효가 긴 약물을 맞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 회장은 박태환이 의도적으로 이 약을 맞은 건 아니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검찰수사과정에서 박태환에게 주사를 놓은 병원 측이 “박태환의 남성호르몬수치가 낮기 때문에 올리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진술한 내용을 우려하고 있었다. 검찰 수사에서는 해당 의사가 테스토스테론이 금지약물인지 모르고 이 같은 처방을 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은 점을 알고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했다는 것은 고의적인 도핑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열릴 FINA 청문회에서 민감하게 다뤄질 수 있는 부분이다.

도핑검사에서 보통 혈액 100mg 속에 테스토스테론이 250~1100 ng(나노그램) 포함돼 있으면 정상으로 판단한다. 평소 비교적 낮은 수치인 300ng의 테스토스테론을 포함하고 있는 A선수가 800ng의 테스토스테론을 외부에서 투입해도 도핑 검사에서는 정상치 안에 머무르게 된다. 따라서 평소 체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은 선수가 도핑을 마음먹으면 소량을 꾸준히 투입하는 수법을 쓴다. 이를 이용한 대표적인 선수가 미국의 국민적 사이클 영웅이었던 랜스 암스트롱이었다고 한다. 그는 주사를 맞는 방식의 기존의 테스토스테론 제재로는 원하는 만큼의 소량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자신의 담당의사와 짜고 소량의 테스토스테론을 혀 밑에 넣어 녹이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런 수법은 1차 도핑검사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의 총량만을 검사하는 점을 노린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도핑 검사 방법은 선수의 평소 각종 호르몬 수치를 꾸준히 축적해 그 추이를 살펴보는 식으로 변하고 있다. 수치가 정상범위에 있더라도 평소에 비해 뚜렷한 변화가 눈에 띄면 바로 도핑 검사를 실시하고 2차 검사까지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다.

박 회장은 “아무리 완벽하게 도핑을 하려고 해도 2차 검사까지 실시하면 결국엔 걸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2차 검사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의 분자구성 비율을 살핀다. 체내에서 만들어진 테스토스테론과 체외에서 만들어진 테스토스테론은 탄소 동위원소의 구성비율이 다르다. 외부에서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몸 안에서 만들어진 것과 똑같이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구성 비율은 선수들에게 알려줘서는 안 되는 비밀이다. 그는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으니 테스토스테론을 조금만 맞으면 도핑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 말로 큰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어차피 이제는 초미의 관심사가 박태환이 청문회에서 징계를 얼마나 경감 받느냐가 아니겠어요? 저는 박태환이 상당히 불리하다고 봅니다.”

그는 다가오는 청문회에서 박태환이 징계를 경감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테스토스테론 투입으로 적발된 선수는 2년 자격정지를 받았다. 올해부터는 규정이 더욱 강화돼 4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는다. 박태환은 지난해 적발됐기에 지난해까지의 규정대로 2년 자격정지를 받게 된다. 어쨌든 2년 자격정지를 받으면 박태환은 내년 8월 예정인 리우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 박태환의 선수 생명은 사실상 끝난다.

그는 “청문회에 나선 선수는 자신이 맞은 약물이 금지약물인지 아닌지 얼마나 적극적으로 알아봤는지를 보여야합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박태환이 의사에게 ‘이게 금지약물이냐 아니냐’고 물어본 것이 전부인 상황이라 청문위원들이 어떻게 볼지….”

박태환이 징계를 경감받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외부요인이 발생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약물을 사용했는데, 그 치료 약물에 테스토스테론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박태환은 당시 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 테스토스테론은 치료제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동안 테스토스테론으로 적발된 선수들은 치료 목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을 사용했음을 증명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박태환으로서는 이번 상황에서 금지약물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소극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박 회장은 분석했다.

청문회에는 의료전문가와 법률가 등 3명의 위원이 참석한다. 박태환의 소명을 듣고 FINA의 어떤 규정을 적용할지 결정한다. 징계가 생각보다 강하게 나왔다고 판단되면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박 회장은 설명했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박 회장은 학창 시절 스키를 광적으로 즐기던 스포츠맨이었다. 스포츠를 좋아해 스포츠의학에 투신했다. 2006 도하 아시아경기,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 2012 런던 올림픽 한국 대표팀 의무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아시아올림픽 평의회(OCA) 의무위원을 맡고 있다. 오랫동안 국내외의 도핑관리 현장에 있었던 전문가다. 에피소드도 많다.

“광저우 아시아경기가 열리던 어느 날이었어요. 누군가 ‘링게루’를 맞자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지금도 어이가 없는 지 웃었다. ‘링게루’는 생리 식염수를 뜻한다. 찾아온 사람은 이름만 대면 온 국민이 알만한 스타출신이었다. 자신이 지도하는 선수가 컨디션이 떨어졌으니 ‘링게루’라도 놔달라고 한 것이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링게루는 경기력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도핑 속임수에 이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랜스 암스트롱은 테스토스테론 투입 외에도 소위 ‘자가수혈’을 한 뒤 생리식염수로 희석시키는 방법으로 도핑테스트를 빠져나가곤 했다. 자가수혈은 자신의 피를 뽑아 따로 보관하다가 경기 때 적혈구만 뽑아 새로 주입하는 것이다. 적혈구에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포함돼 있다. 이를 늘리면 산소 운반량이 늘어나 운동능력이 향상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혈액 성분의 농도를 검사 하는데, 생리 식염수나 다른 액체를 혈관에 투입하면 이 농도를 희석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기 중 수액 제재를 맞을 때는 소명자료를 제출해야한다. 이런 내용을 모르고 찾아온 그 지도자를 돌려보냈는데, 그가 염려했던 그 선수는 ‘링게루’를 맞지 않고도 금메달을 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소문이 퍼져 국내에 돌아온 뒤 여러 명이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큰 낭패를 볼 뻔했다.

그는 지난해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한국의 도핑관리 시스템이 허술하게 운영돼 OCA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은 것이 마음 아팠다고 했다. 도핑관리 시스템의 전반적인 과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을 배치해서 운영이 매끄럽게 되도록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점은 2018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도 거울로 삼아야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대한스포츠의학회에는 1600여 명의 의사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선수의 체계적인 관리 및 부상 예방과 재활, 도핑방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 스포츠의학은 이제 막 성장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대한스포츠의학회는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최하는 ‘2017년 세계부상질병예방콘퍼런스’ 및 ‘IOC 팀 주치의 연수코스’를 한국에 유치했다. 스포츠의학계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이 행사에서는 최신의 스포츠의학 이론이 논의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스포츠의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보다 체계적인 선수 육성 및 선수보호에 기여하고 싶은 것이 그의 희망이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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