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野人·野設(야인야설)]“순둥이 박병호, 큰 선수 되어있더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7일 16시 32분


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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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해 보이는 미소는 여전했지만 웃음의 결이 달랐습니다. 27일 KIA와의 연습경기가 열린 일본 오키나와 킨 스타디움에서 만난 넥센 박병호(29)는 활짝 웃는 얼굴로 기자를 맞았습니다. 그는 LG 유망주 시절에도 밝은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웃음 뒤의 씁쓸함까지 감추진 못했었지요. LG의 2군 연습장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넥센으로의 트레이드였습니다. LG 박병호와 넥센 박병호의 차이를 만든 건 마음가짐입니다. LG에서는 ‘삼진만 당하지 말자’를 되새기며 타석에 들어섰지만 넥센에서는 ‘삼진은 의식하지 말고 내 스윙을 하자’로 바뀌었지요. 부담을 떨쳐버린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홈런왕으로 성장했습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그의 홈런은 31개→37개→52개로 늘었습니다.

보통 선수라면 52개의 홈런에 안주할 만 합니다. 하지만 박병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홈런을 많이 치긴 했지만 시즌 내내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보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내내 그는 새로운 타격 폼을 만드는 데 한창입니다. 타격 스탠스를 줄이고, 잔동작도 최소화 했습니다. 더 강한 타구를 만들기 위해 방망이 무게도 880g에서 900g으로 늘렸습니다. 방망이 무게를 버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홈런 수를 늘리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그는 “작년에는 실투를 홈런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파울을 낸 적이 많았다. 공 움직임이 좋은 투수들도 잘 공략하지 못했다. 홈런 개수를 떠나 캠프 때 익힌 타격 폼을 시즌 중에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느덧 박병호는 경기 자체보다는 준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선수가 돼있었습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지난해가 병호에겐 고비였다. 시즌 중반까지 좋을 때와 안 좋을 때의 차이가 적지 않았다. 홈런도 많았지만 삼진(142개)도 많이 당한 이유다. 하지만 결국 모든 걸 이겨냈다. 이미 대 타자가 된 병호가 올해 또 다른 도전을 하는 게 대견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국민타자’ 이승엽(39·삼성)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이승엽 역시 최고의 자리에서도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1999년 54홈런을 친 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타격 폼을 수정했고, 2003년 당시 아시아 신기록인 56홈런을 쳤지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뒤에도 여전히 겸손한 것도 둘의 공통점입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박병호는 7시즌을 채워 해외진출자격을 얻습니다. 구단의 동의만 있다면 해외 진출이 가능합니다. 올해 강정호를 피츠버그에 보낸 넥센은 박병호의 해외 진출도 적극 돕겠다는 자세입니다.

박병호는 “멀리 바라보기 보다는 올해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메이저리그는 나뿐 아니라 야구를 하는 모든 선수들의 꿈이다. 사실 야구를 잘 못할 때(LG 시절을 지칭)조차도 메이저리그 중계를 꾸준히 봐 왔다”고 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이승엽도 밟아보지 못한 길입니다. 이승엽도 인정한 ‘홈런 타자’ 박병호는 내년에는 과연 어느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을까요.

오키나와=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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