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야구를 ‘한국판 머니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넥센 이장석 대표는 머니볼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의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의 이름을 따 ‘빌리 장석’이라고도 불린다.
저비용 고효율, 성공적인 선수 트레이드 등 공통점은 많다. 하지만 상황이 다르고 시기가 다른 만큼 오클랜드와 넥센의 머니볼을 같은 범주에 묶기는 어렵다. 그래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있다. 발상의 전환이다.
머니볼 이론을 도입하기 한 해 전인 2001년에도 오클랜드는 102승(60패)으로 아메리칸리그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시즌 후 제이슨 지암비, 조니 데이먼 등 핵심 선수들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으면서 전력이 크게 약화될 위기에 처했다. 오클랜드가 재정이 탄탄한 구단이었다면 빈 단장도 굳이 ‘머니볼’ 야구를 할 이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돈으로 FA를 사버리면 됐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고, 그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출루율에 주목했다. 결과는 성공이었고, 빈 단장의 머니볼은 그렇게 시작됐다.
넥센도 비슷하다. 넥센은 프로야구 10개 팀 중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는 야구 전문 기업이다. 돈으로 맞붙으면 이길 수 없는 상대 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려면 뭔가 다른 걸 생각해야 했다. ‘넥센판 머니볼’이 시작된 배경이다.
빈 단장과 달리 이 대표에겐 넥센판 머니볼을 함께 완성해 나갈 훌륭한 동반자가 있다. 바로 염경엽 감독(사진)이다.
48일간에 걸친 미국, 일본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염 감독은 평범해 보이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넥센이 아직까지는 타자의 팀이지만 앞으로는 투수의 팀으로 거듭나야 한다.”
염 감독은 “올 시즌이 끝나면 박병호, 손승락, 유한준, 문우람 등 4명은 우리 팀에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홈런왕 박병호는 시즌 후 해외 진출 자격을 얻는다. 마무리 투수 손승락과 외야수 유한준은 FA가 되고, 문우람은 군 입대가 예정돼 있다. 그는 “감독으로서야 이들이 있으면 좋지만 우리 팀 사정상 80억∼100억 원씩 주고 선수를 잡을 수 있겠나. 오히려 잡아주면 부담이 될 수 있다. 계속 강팀으로 남으려면 투수의 팀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메이저리그 피츠버그로 이적한 유격수 강정호에 대해서도 그는 “지난해부터 선수들에게 ‘강정호는 없다’는 얘기를 해 왔다. 그래서인지 선수들도 강정호의 공백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빈 단장은 2002년 103승을 거둔 아트 하우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영화에서처럼 대놓고 하우 감독의 선수 운용에 간섭한 건 아니었지만 야구를 바라보는 둘의 관점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반면 염 감독은 넥센이라는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넥센이 지난해 말 계약기간이 1년 남아 있던 염 감독에게 3년 재계약이라는 선물을 줬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같은 야구 색깔을 공유하는 감독을 오랫동안 데리고 있고 싶은 건 당연하다.
염 감독에게도 넥센은 자신의 야구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다. 2012년 말 감독 부임 후 염 감독은 올해까지 3년 연속 스프링캠프에서 메이저리그식 ‘자율 훈련’을 했다.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 때 넥센 선수들은 오후 2시 전 단체 훈련을 모두 끝냈다. 이후에는 스스로 알아서 자신에게 맞는 훈련을 했다. 일본에서는 연습경기만 치렀을 뿐 따로 훈련을 하지 않았다.
염 감독은 “사실 첫해 자율훈련을 할 때는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이 그 자율을 책임감 있게 따라줬다. 훈련보다는 경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강팀으로 부상한 넥센은 현장과 프런트의 합작품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야구할 수 있는 팀은 넥센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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