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찼다. 그러나 KIA 덕아웃에는 새로운 활력이 넘쳤다. 1년간 집을 떠났던 에이스 윤석민(29)이 다시 KIA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윤석민은 삼성과의 시범경기가 한파로 취소된 10일 포항구장에서 처음으로 팀 훈련을 함께 소화했다. 9일 KIA의 경주 숙소에 합류했고, 이날 함께 운동장에 나왔다. KIA 김기태 감독은 10일 “석민이를 만나 간단하게 차 한 잔을 했다. 몸 상태 같은 얘기는 별로 안 하고 그냥 마음이 어떤지 좀 물었다”며 “내가 ‘축하를 해줘야 하나, 아니면 안타까워 해줘야 하나’라고 묻자 ‘축하해 주시면 좋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KIA에서 첫 시즌을 맞는 김 감독에게는 윤석민이 천군만마와도 같은 존재다. 김 감독은 “젊은 투수들이 윤석민과 함께 뛸 수 있어서 신난 것 같다”며 “이제 보직도 생각해야 하니 코치들에게 훈련 및 등판 스케줄을 잡아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 불펜피칭 42개 소화, 시범경기 등판 예정
윤석민은 워밍업을 마친 뒤 조계현 수석코치와 이대진 투수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벼운 불펜피칭을 소화했다. 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모두 점검하면서 총 42개를 던졌다. 조 코치는 “몸을 잘 만들어 온 것 같다. 역시 좋은 투수다”라고 합격점을 줬다. 이 코치도 “생각보다 가볍게 잘 던진다. 계약하느라 일주일 정도 운동을 못 했다는데도 개인훈련을 잘 해서 공백이 크게 안 느껴진다”고 했다. 윤석민의 공을 직접 받은 박수서 불펜포수 역시 “세게 던진 것도 아닌데 공이 아주 좋다. 특히 슬라이더가 예전만큼 휘었던 것 같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윤석민 스스로도 만족스러워했다. “날씨가 추워서 초반에는 좀 힘들었는데, 던지다보니 몸이 풀렸다. 컨디션 체크 차원에서 던져서 힘을 다 쓰지는 않았다”며 “생각보다 공이 잘 들어갔다. 감각이나 밸런스가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으니, 이제 실전에서의 점검이 남았다. 이 코치는 “시범경기 기간에 적어도 한번은 나가서 던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 “잘 던지던 내 모습, 다시 보여드리고 싶다”
윤석민은 불펜피칭과 마무리운동을 모두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났다. 담담하지만 복잡한 심경이 담긴 표정.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던 아쉬움이 그 누구보다 컸을 터다. 그러나 그는 “꿈을 접고 돌아온 만큼 후회 없는 결정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9년을 몸담았던 팀에 1년 만에 다시 돌아오니까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도 팀 분위기가 많이 밝아진 것 같아서 하루 만에 괜찮아졌고, 재미있게 훈련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윤석민은 KIA로 복귀하면서 4년간 90억원에 계약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보람에 앞서 부담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윤석민은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간 잘 못했기 때문에 정말 잘 하고 싶다. 솔직히 운도 좀 따라줬으면 좋겠고, 팀도 잘 됐으면 좋겠다”며 “예전에 좋았을 때처럼 던지는 모습을 다시 보여드리고 싶다. 야구와 생활면에서 모두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KIA에 있는 동안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보고 싶다”고 바랐다. 말을 많이 아끼던 윤석민의 목소리에 순간 힘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