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2.195㎞ 지점을 밟은 김성은(26·삼성전자)은 몇 걸음 더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얼굴에선 끝내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한국 여자 마라톤 최고 기록 경신(2시간26분12초)에 대한 주변의 기대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의연했던 김성은이다. 하지만 15일 2015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6회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28분20초로 결승선을 밟자 절로 눈물이 나왔다. 기록에 대한 아쉬움보다 자신을 위해 애써준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이날 김성은은 여자부 국제 2위, 국내 1위를 기록했다. 국내부 4연패에 첫 국제부 2위지만 김성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목표로 했던 자신의 최고기록 경신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2013년 대회에서 2시간27분20초로 최고기록을 세운 뒤 김성은에겐 1997년 권은주가 세운 한국기록 경신에 대한 기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기대가 부담으로 변하자 그는 한국기록 대신 자신의 기량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쪽으로 목표를 바꿨다.
김성은은 “초반 페이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느려서 더 당겨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페이스가 느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30㎞ 이상 구간에서 늘 페이스가 떨어졌던 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겨울 제주에서 체력훈련에 집중했다. 이날도 30㎞지점을 통과한 뒤 갑자기 다리가 무거워지긴 했지만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는 “기록은 좋지 않았지만 훈련 덕에 페이스 유지할 체력이 좋아진 건 느꼈다. 다음에는 30㎞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단 자신감이 생겼다. 나머지 10㎞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 마라톤 해설을 맡았던 권은주 특별해설위원(38)은 김성은의 기록 경신 실패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권 해설위원은 1997년 한국기록을 작성한지 18년 만에 해설로 다시 서울국제마라톤을 찾았다. 그는 “마라톤은 구간별로 페이스가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김성은은 5~10㎞구간(17분36초)에서 생각보다 늦어졌다. 이걸 무리해서 당기려다 보니 리듬이 깨졌고 30㎞구간 이후부터 너무 늦어졌다”고 분석했다.
권 해설위원은 해설을 하며 한국기록을 작성했던 18년 전 그때를 떠올렸다. 그는 “1997년에는 21살 나이로 처음 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했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뛰었다. 당시 감독님도 내가 완주를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자꾸 페이스를 낮추라고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해설 제의를 받고는 자신의 기록을 경신할지 모르는 자리에 나선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해설을 맡고 보니 자신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기록이 깨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막상 내 기록이 깨진다면 시원섭섭할 것 같다.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서 꼭 깨져야 할 기록이다. 내년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자리에서 내 기록이 깨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오늘 성은이가 기록경신에 실패해 아쉽지만 워낙 정신적으로 강한 친구라 꼭 해낼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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