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에 태권도·양궁 등 2년째 무상지원 우리도 ‘체육선진국’…이젠 베풀어야 국내선 소외된 체육인 지원사업 필요 엘리트체육은 장기적 로드맵으로 강화
스포츠동아가 창간한 2008년 3월 24일. 태릉선수촌은 그해 8월 개막하는 베이징올림픽 준비로 분주했다. 이에리사(61·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태릉선수촌장으로 올림픽 준비를 총괄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의 선수촌 내 촬영 협조 요청도 “선수들의 훈련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모든 초점은 경기력에 맞췄다. 결국 한국은 베이징올림픽에서 금 13개, 은 10개, 동 8개로 종합 7위를 달성했다. 당시 이 촌장은 대회를 마친 뒤 “종합 10위권 진입도 의미가 있지만, 장기적인 체육 지원이 절실하다. 유소년체육의 강화와 선수 은퇴 후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림픽을 끝으로 다시 용인대 강단으로 돌아간 그녀는 2012년 4월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선수촌장 시절부터 구상했던 체육 정책들을 입안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로 2013년 12월에는 이른바 ‘체육유공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성과를 거뒀다. 4월 정기국회에선 체육인복지법 제정을 위해 뛸 계획이다. 15∼20일 부탄에 건너가 지겔 우겐 왕축(부탄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왕자와 양국의 스포츠교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스포츠외교에도 힘을 쏟고 있다.
-최근 부탄 방문은 어떻게 계획하게 됐나?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장을 할 당시 부탄선수들을 만났다. 부탄은 가난한 나라지만, 행복지수가 높다.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서 아시안게임 7회 연속 출전에도 불구하고 비바람 피할 작은 체육관 하나 없는 딱한 사정을 알게 됐다. 이제는 우리도 체육선진국으로서 베풀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부탄선수단에 약속한대로 태권도 매트와 복싱 글러브, 양궁 장비(약 4700만원 상당) 등을 전달하게 됐다. 지난해 7월 남수단에 이어 2번째 해외 지원 활동이다. 향후에도 지도자 파견, 체육관 건립 등을 추진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경제적인 여건이 되는 기업에도 도움을 받고 싶다. 부탄에 태극기가 걸린 체육관이 있다면 역사에 남을 일이 되지 않겠나.”
-체육인복지법 제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반대로 법안심사 소위 상정 자체가 안 되고 있다. 이 법안의 핵심은 한국체육인복지재단의 설립이다. 이 재단을 통해 체육인의 복지 및 진로 지원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의원들도 필요성을 공감한 부분이다. 하지만 문체부가 신규 기관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이미 예술인복지법이 제정(2011년 11월)되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설립(2012년 11월)됐다. 그런데 왜 문화예술분야의 복지사업은 되고, 체육은 안 된다는 것인가. 체육인을 그만큼 소외시키는 일이다.”(이에리사 의원실에 따르면 2015년 예술인복지재단 예산은 206억원이다.)
-체육인 복지에서 가장 시급한 부분은 무엇인가?
“은퇴 선수 진로 모색 및 체육 원로 지원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문체부 장관에게 ‘1년간 은퇴 준비를 할 수 있는 무상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사회로 나올 때의 두려움 때문에 선수도, 은퇴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현재는 대안이 없다. 또 국가에 공헌한 원로 체육인 중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 영화인복지재단을 통한 공로 영화인 복지지원사업을 살펴보면, 만 65세 이상 영화인 중 한국영화 발전에 공로가 있는 자에겐 매달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 또 장학금, 위로금, 생계비 등도 지원한다. 체육인에게 이런 복지가 없다면, 이는 명백히 체육에 대한 차별이다.”
-일각에선 체육인재육성재단의 역할과 중복된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 문체부가 펼치는 논리다. 체육인재육성재단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사업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체육인복지재단의 설립은 이렇게 나뉘어 진행되는 체육인 복지제도를 효율적으로 정비하고 통합하자는 취지다. 문체부는 ‘체육인재를 발굴하고 키우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체육인재육성재단을 만들었다. 은퇴 선수 지원, 원로 체육인 복지 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는 체육인 스스로가 더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는 부분인데 안타깝다. 나 또한 체육인으로서 부끄럽지만, 여전히 체육인들이 순종적이고 자기가 필요한 것을 주장하는 데 익숙지 않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을 골자로 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양 단체의 통합 흐름은 어떻게 보나?
“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예산을 절감하고, 경제적인 손실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50년 만에 한국체육의 큰 틀을 바꾸는 일을 너무 급박하게 추진했다. 체육인, 원로, 학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충분한 토론을 거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체육인 스스로가 현재 논의들을 이해하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통합체육회는 생활체육은 물론 엘리트체육까지 관리하는 단체다. 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현재로선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을 어떻게 육성해갈 것인가’라는 로드맵이 부재하다. 우리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외국의 사례를 가지고 장밋빛 그림만 그려선 안 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아직 방과 후 클럽스포츠에서 국가대표를 육성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이 없다고 본다. 탁구선수 시절인 1980년 독일 FGT 프랑크푸르트에 진출해 체육선진국의 현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독일엔 클럽도 많고 시설 역시 충분하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잘하는 선수들이 나올 수 있는 구조다. 이들은 엘리트선수가 돼 클럽 회원들이 내는 돈으로 상위리그에서 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통합체육회 출범 이후 엘리트체육이 약화되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선다.”
-대한체육회와 KOC(대한올림픽위원회)의 분리 문제는 어떻게 보나?
“한국체육의 새판 짜기 속에서 대한체육회가 문체부에 너무 끌려간다. 생활체육회와의 통합이 2016년 3월로 잡히면서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의 임기가 1년 줄었다. 이것부터가 대한체육회로선 굴욕적이다. 이미 통합 논의가 생활체육 중심으로 가는 느낌이다. 대한체육회와 KOC 분리 논의에 있어서도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추구하는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됐다. KOC 위원장으로서 큰 오점을 남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