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기록 통계적 인정 받으려면… 최소 900타석 들어서야 하는데
그렇게 많은 기회 잡기 쉽나요
2014년 4월 홈런 8개 LG 조쉬벨도… 불과 두 달 뒤엔 퇴출 당했습니다
박준태(48)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프로야구 태평양을 응원하며 컸습니다. 이 팀을 응원하면서 가장 화가 났던 건 1992년 동아일보에서 “‘지는 해’ 윤덕규 ‘뜨는 해’ 박준태, LG-태평양 맞교환”이라는 기사를 읽었을 때였습니다. 박준태는 광주일고 재학시절 사상 최초로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로 뽑혀 ‘야구천재’라는 별명을 얻은 유망주였습니다. 그런 선수를 트레이드하다니요.
슬픈 예감은 틀리는 적이 없는 법. 박준태는 1993년 봄 기량이 만개했습니다. 그해 4월 박준태는 타율(0.417), 출루율(0.509), 장타력(0.708), 최다 안타(20개), 도루(10개) 등 공격 5개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이름을 널리 알리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그의 최종 타율은 0.267(19위)에 그쳤습니다. 시즌 중반까지도 수위 타자 경쟁을 벌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록이 떨어지기만 했습니다. 이듬해도 4월에는 4할을 넘게 쳤지만 시즌 최종 성적표는 0.274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요? 프로야구에서 타자들은 한 달 동안에 100번 타석에 들어서기도 쉽지 않습니다. 야구 통계 전문 웹사이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prospectus·안내서)’에 따르면 표본 수가 이렇게 적을 때는 ‘우연히’ 높은 기록이 나와도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지난해도 그랬습니다. LG 외국인 타자 조쉬벨(29)은 4월 30일까지 홈런 8개로 선두였습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뒤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홈런 2개를 추가하기는 했지만 5월 이후 타율이 0.234밖에 되지 않은 게 문제였습니다. 당시 양상문 LG 감독은 “상대 전력분석팀에 약점이 노출됐다. 몸쪽 공에 속절없이 약한 면모를 보이고, 떨어지는 변화구에 대처가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구는 한때 잘했다고 계속 잘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상대를 연구해 공략법을 찾아낸 선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1년에 100경기도 넘게 치르는 데다 약점을 고치겠다고 타격 폼이나 투구 폼을 손봤다가 다른 약점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타석에 900번도 넘게 들어서고 나서야 “저 친구 공 좀 칠 줄 안다”고 통계학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900번이나 기회를 얻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 기회를 주려면 그 감독은 “A 선수는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팬들의 비난을 2년 정도 참아내야만 합니다. 실패하면 모조리 감독 책임이니 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게 쉬운 일은 절대 아닐 겁니다.
게다가 400타수를 기준으로 하면 3할 타자도 1주일에 안타를 하나씩만 못 치면 타율은 0.240으로 곤두박질칩니다. 실패가 생각만큼 대단한 일은 아닌 셈입니다. “누군가 평생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낼 때 누군가는 1주일에 하나씩 터진 ‘바가지 안타’ 덕에 뉴욕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는다”던 영화 ‘19번째 남자’의 대사 한 구절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일 겁니다.
아직 봄입니다. 그러니 응원 팀이 지금 잘나간다고 너무 설레발을 떨 필요가 없듯 기대만큼 응원 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벌써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가 제2의 박준태가 될지 모르는 것처럼 언제 바가지 안타가 터질지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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