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생존한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전했다. ‘축구 전쟁’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살아남지 못한 자만 슬플 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그것도 시민구단이 거대한 기업구단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K리그 클래식에 잔류한다면 드라마 ‘미생’의 오 과장이 말했듯이 더할 나위가 없다.
▷대전과 광주는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에서 올라왔다. 2013년 클래식 멤버였다 강등됐던 대전은 지난해 챌린지를 평정했다. 승점 70점(20승 10무 6패)으로 1위를 차지하며 일찌감치 승격을 확정했다. 반면 승점 51점(13승 12무 11패)으로 4위에 그쳤던 광주는 챌린지 플레이오프(PO)에서 3위 강원, 2위 안산을 차례로 격파한 뒤 클래식 멤버였던 경남까지 제치고 나서야 승격 티켓을 따냈다.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클래식에 합류했지만 개막 전만 해도 광주에 대한 평가는 ‘강등 후보 1순위’였다. 클럽하우스는커녕 전용훈련장도 없고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로 전반기 내내 안방 경기장(광주월드컵경기장)조차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달랐다. 광주는 5라운드 현재 승점 7점(2승 1무 2패)으로 12개 팀 가운데 6위에 올라있다. 인천과의 개막전을 무승부로 시작한 광주는 대전과의 맞대결에서 2-0으로 승리했고 기업구단 부산마저 3-2로 제압했다. 12일 전북에 2-3으로 졌지만 볼 점유시간과 유효 슈팅수에서 앞서며 ‘1강’ 전북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광주는 전통의 강호 포항(8위), 부산(9위), 서울(10위)을 순위표 아래에 두고 있다. 3위 수원과의 승점 차도 3점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대전의 시작은 초라하다. 부산과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광주-제주-성남에 잇달아 졌다. 제주에는 0-5, 성남에는 1-4로 대패했다. 개막 4경기에서 12골을 내주고 1골만 넣었다. 성적이 나쁜 데는 이유가 있다. 구단 내 갈등이 심상치 않다. K리그 최초의 구단 노조인 민주노총 대전시티즌지회는 8일 노조 설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신임 사장이 성적 부진을 빌미 삼아 비상식적으로 사무국을 운영하려 한다”는 성명을 냈다. 구단은 9일 임시이사회를 열었지만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대전은 11일 울산과의 대결에서 1-1로 비기며 처음으로 승점을 챙기고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시즌 초반이라 속단은 이르다. 하지만 ‘강등 1순위’로 꼽혔던 광주가 클래식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광주가 의외로 단단하다. 환경이 좋지 않고 이름 있는 선수도 없지만 ‘공부하는 사령탑’ 남기일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똘똘 뭉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전에 대해서는 “기존 클래식 구단들이 (지난해 모습을 보고) 경계를 많이 한 것 같다. 프런트가 안정적이지 못한 것도 부진의 원인으로 보인다.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반전할 능력은 있다”고 말했다. 함께 신분 상승을 이뤘지만 초반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두 팀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을 자는 누굴까. 15일 열리는 6라운드에서 광주는 제주와, 대전은 서울과 대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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