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답게 평소 거침없는 화법을 구사하지만, 부적절한 발언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스포츠동아DB
■ 김세진 감독, 두번의 결례
“상금 1만달러짜리 대회 해야하느냐” 불평 “출전 선수 늘려달라” 관례 깬 무리한 요구
한국과 일본의 배구 챔피언들이 겨루는 한·일 탑매치가 12일 장충체육관에서 펼쳐졌다. 2년 만에 다시 열린 대회에서 양국은 1승씩 나눠가졌다. 일본여자배구는 또 한 번 저력을 과시했고, OK저축은행은 한국남자배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 코트에서 공을 주워주는 일본팀의 단장
기자가 눈여겨본 것은 일본여자팀 NEC의 현장 책임자(팀 매니저)였다. 양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그는 감독 옆자리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우리와는 직책과 업무 시스템이 다르긴 하지만, 부장급으로 단장 역할을 수행했다. 실업팀 NEC 선수들은 직원 신분이다. 월급도 일반 직원들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들의 인솔책임자로 현장에서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리는 팀 매니저는 경기 전 선수들이 몸을 풀자 뒤에서 열심히 공을 주웠다. 경기 후 선수들을 도열시킨 뒤 악수하고, 본부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국내 단장들과는 달랐다.
선수나 프런트의 행동만 놓고 보면 일본 실업팀이 우리보다 더 프로페셔널 같았다. NEC 선수들은 2박3일간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계속 훈련했다. 숙소에서도 여유공간만 생기면 모여서 훈련했다. IBK기업은행과의 12일 오후 5시 경기를 앞두고 오전에 코트적응훈련을 한 뒤 경기 2시간 전 장충체육관 지하훈련장에서 또 1시간 동안 몸을 풀었다. 세트스코어 3-0으로 이긴 뒤에도 훈련을 또 했다. 훈련량이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맡은 일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직업의식에서 한국과 일본 배구는 달랐다.
● 탑매치 일정을 보는 양국 감독의 시각차
이번 일정은 우리에게 불리했다. 일본은 4월 5일 챔피언이 결정됐는데, 우리는 챔피언 결정전(남자부 4월 1일·여자부 3월 31일)이 너무 일찍 끝났다. 한 시즌 동안 고생한 선수들에게 휴가를 빨리 주고 싶은데, 선수들을 더 잡아두고 부담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우리 감독들의 입장이 이해는 됐다.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감독들은 “차라리 다음 시즌 개막 이전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시즌 개막에 1개월 가량 차이가 나는 만큼, 이는 어려운 일이다. 일본 감독들은 “주어진 상황이라면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OK저축은행 김세진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 들어서면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했다. 한국 취재진만 있다고 생각해 편하게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대회를 준비한 두 나라 배구 관계자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었다. “이런 대회를 꼭 해야 하느냐. 우승상금이 1만달러밖에 안 되는데, 무슨 고등학교대회도 아니고”라고 불평했다. 공식 만찬장에 들어가면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또 했다. 어려운 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때와 장소를 골라 말해야 했다. 일본 취재진이 몰랐으면 참 다행이지만, 세상일은 모른다.
● 테크니컬 미팅에서의 해프닝, 그리고 2번의 결례
11일 오전 테크니컬미팅에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경기를 앞두고 참가팀 대표자들이 모여 경기방식, 로컬룰 등 세부사항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김세진 감독은 14명만 출전이 가능한 대회방식이 불만스러웠다. 우리 V리그에선 18명의 선수가 경기에 나서지만, 탑매치는 그동안 14명이 출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 감독은 사전에 JT 감독과 얘기해 18명 출전으로 바꾸고자 했다. 일본 V리그기구는 거부했다. 연습경기라면 관계없지만, 종전까지 해오던 관례가 있고 국제대회의 성격에도 어긋난다고 봤던 모양이다. 특히 두 팀 감독끼리 얘기해서 다른 룰을 결정한 것에 대해 불쾌한 표정이었다. 일본 관계자는 “이런 상황들은 협의서에서 미리 정한 것 아니냐. 그동안 이 방식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이런 요청이 들어왔다. 또 이런 요청은 한국배구연맹(KOVO)을 통해야 하는데 팀끼리 결정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4명 출전 방안이 확정되자, 김 감독은 시몬, 이민규, 송명근, 송희채를 14명 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KOVO 관계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후 OK저축은행은 단장을 통해 또 한번 18명 출전을 관철시켜달라고 요청했다. KOVO 윤경식 사무국장이 11일 오후 코트적응훈련 때 일본 V리그기구 하야시 다카히코 이사에게 또 한번 얘기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들은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날 김 감독은 말을 바꿔 주전선수를 14명 엔트리에 다 넣고 경기에 이겼다. 그러나 이틀간 벌어진 해프닝으로 인해 승리의 가치는 떨어졌다. KOVO 관계자는 “일본에 같은 부탁을 하면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