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39>강춘자 KLPGA 수석부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7일 03시 00분


59세 미혼… “늘 설렘 주는 골프가 평생 반려자”

1978년 5월 26일 경기 양주 로얄골프장에서는 여자 프로골퍼 테스트가 처음 열렸다. 참가자 8명 중 4명이 커트라인(36홀 합계 161타)을 통과해 합격증을 받았다. 1위는 155타를 친 강춘자였고, 한명현과 구옥희가 2, 3위가 됐다. 4위는 안종현. 꿈 많던 20대에 영광스러운 회원 번호 1번을 부여받은 강춘자는 한국 최초의 여자 프로골퍼로서 멀고 험한 길에 들어섰다. 그로부터 37년. 그는 부회장으로 불리며 여전히 필드를 지키고 있다.

○ 한국 여자프로골퍼 1호

어느새 환갑을 바라보는 강춘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수석 부회장(59)이다. 한국 여자 골프 역사의 산증인인 그를 만난 20일 서울 강남구 KLPGA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는 이날 현재 KLPGA 정회원 수가 표시돼 있었다. 2008명. 그가 1호로 스타트를 끊은 뒤 2000명을 넘긴 것이다.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맞은 강 부회장은 “맨땅에서 시작한 한국 여자프로골프가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 3대 투어로 성장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한때 남자 대회가 열리면 그 상금 일부를 떼어 번외 경기로 치렀던 여자프로골프는 올 시즌 29개 대회에 총상금 합계가 2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전성기를 맞았다. 이젠 남자 대회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어 ‘여고남저’ 현상까지 일어났다.

경기 김포 출신인 강 부회장은 여섯 살 위 언니가 없었다면 골프와 인연을 맺을 수 없었다. “성동여실고 3학년 때인 1974년 언니가 프런트 직원으로 일하던 뚝섬경마장 9홀 골프장에서 캐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해 12시간 넘게 일하고 한 달에 2만5000원을 벌었다. 월세로 5000원을 내던 시절이다.” 6개월 동안 캐디로 일한 뒤 그는 골프 선수에 도전해 2년 동안 이를 악물었다. “골프 채 살 돈이 없어 골프장 대여 클럽으로 연습했다. 매일 1000개씩 공을 쳤다. 프로 테스트 나갈 때도 손님 채에 골프화까지 빌려 나갔다.” 고생 끝에 프로가 됐어도 오히려 허무감이 몰려왔다. 국내 대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82년 그는 동료 몇몇과 일본 대회 문을 두드렸다. 한국 여자골프의 첫 해외 진출이다.

○ 국내 통산 10승 후 행정가로

제1회 한국여자오픈을 포함해 국내 통산 10승을 거둔 그는 “1983년 한 해에 5번 우승하고 980만 원을 벌었다. 목돈이 생겨 스텔라 승용차를 장만했다. 요즘 선수들은 참 풍요롭다”고 했다. 1992년부터 KLPGA 행정가로 활동하는 그는 해외에서 맹활약하는 후배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9개 대회에서 6승을 합작하는 초강세다. 강 부회장은 “정말 잘해 감동적이다. 자랑스럽다. 국내 투어가 밑거름이 된 것 같아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한국 여자프로골프는 1부 투어뿐 아니라 2, 3부 투어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실력을 키우는 구조다. “연간 100개 대회를 치른다. 기량 향상을 위한 최적의 코스 세팅에 집중하고 있다. 올 시즌에는 그린의 경도와 습도를 측정하는 첨단 장비를 도입했다. 협회가 한때 내부 갈등을 겪었지만 2012년 구자용 E1 회장을 KLPGA 회장으로 영입한 뒤 소통을 중시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앞으론 상금이나 대우 등 투어의 질적 향상과 해외 투어와의 공조에 집중하겠다.”

강 부회장은 “요즘 화이트 티에서는 (기운이 달려) 87타를 치지만 레이디 티에서는 72타를 친다”고 했지만 평생 한번도 힘든 홀인원을 7번이나 했다. 부러움에 비결을 묻자 그는 “모든 건 하늘의 뜻이다. 다만 정확도가 높아야 확률이 올라가지 않겠나. 김 기자는 평소 연습을 얼마나 하느냐”고 되물었다.

○ 투어 질적향상-해외투어와 공조 확대

강 부회장은 아직 미혼이다. “늘 설렘과 기다림을 주는 골프가 평생의 동반자다. 먼저 간 동기들을 대신한다는 소명의식도 있다.” 그의 프로 동기 3명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KLPGA 회원 번호 4번 안종현은 1983년 백혈병에 걸려 28세로 삶을 마감했다. 통산 7승을 올린 2번 한명현은 암 투병 끝에 2012년 별세했다. 한일 투어 43승을 거둔 3번 구옥희는 2013년 심장마비로 숨졌다. “힘들어도 서로 의지하며 희망을 얘기하던 동료들이었다. 고생만 하다 떠난 것 같다. 요즘처럼 기쁜 일 많을 때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 몫까지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목이 멘 강 부회장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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