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신윤호(40)는 일본 출장 중이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야구를 그만둔 신윤호는 참치 유통 회사의 영업직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신윤호가 갑자기 떠오른 건 한화의 왼손 구원투수 권혁(32) 때문이다.
요즘 권혁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다. 권혁을 빼놓고는 한화의 초반 돌풍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한화가 이기는 경기(혹은 이길 수도 있는 경기)에 대부분 등판했고, 거의 다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다.
28일 현재 성적은 1승 1패 4세이브 4홀드다. 평균자책점은 3.63으로 당당히 이 부문 10위에 올라 있다. 평균자책점 순위에 올라 있다는 건 그가 규정이닝을 채웠다는 의미다. 그는 한화가 이날까지 치른 22경기에서 22와 3분의 1이닝을 던졌다. 한화 마운드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는 그와 선발 투수 유먼뿐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혹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는 다른 구단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초반부터 이렇게 무리하면 다칠 수 있고, 선수 생명이 단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경기를 한국시리즈처럼 치르고 있는 김성근 감독식 야구에 대한 경계심도 숨어 있다.
14년 전인 2001년 신윤호도 그랬다.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그해 LG에서 신윤호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전천후로 70경기에 나가 144와 3분의 1이닝을 던졌다. 결과는 달콤했다. 15승 6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3.12로 다승왕과 승률왕, 구원왕을 모두 차지했다. 그렇지만 이듬해부터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고 쓸쓸히 마운드를 떠나야 했다.
신윤호는 정말 김성근식 혹사 야구의 피해자였을까. 혹사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신윤호는 단호했다. “절대 혹사라고 생각지 않는다. 모든 잘못은 내게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전까지 7년간 무명으로 지내다 처음 큰 성공을 맛보다 보니 자만했다. 올해 이만큼 했으니 내년에도 잘될 거라 생각했다. 시즌 후 관리만 잘했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권혁은 다를 것이다. 삼성 시절부터 이미 야구를 잘했던 선수이고 자기 관리도 충실한 선수인 것 같다”고 했다.
당시의 신윤호와 올해 권혁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즐겁게 마운드에 오르고, 스스로 더 많이 던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권혁은 요즘 “행복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22일 LG전에서 김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그의 볼을 쓰다듬었을 때 그가 지은 미소는 큰 화제가 됐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누군가가 진정으로 자신을 믿어준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신윤호는 “남자는, 특히 선수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죽을힘을 다할 수 있다. 감독님은 내게 기회를 주셨고, 난 기대에 부응하려 최선을 다했다. 성적까지 따라오니 더이상 바랄 게 없었다. 매일이라도 경기에 나가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A구단의 한 선수는 “존재감 없는 선수로 10시즌을 버티는 것보다는 어깨가 으스러지더라도 최고의 자리에 한번 서보고 싶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했다.
권혁이 올해 언제까지 좋은 모습을 보일지, 1년 뒤 어떤 선수가 돼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지금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보고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찬란한 봄날에 권혁은 가장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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