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한 개의 세계를 부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데미안’·헤르만 헤세)
유창식(23·사진)이 프로야구 한화를 떠나게 됐습니다. 한화와 KIA는 6일 유창식과 김광수(34), 노수광(25), 오준혁(23)을 KIA로 보내고 임준섭(26), 박성호(29), 이종환(29)을 받아 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이번 트레이드는 ‘야신’ 김성근 감독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던 한화 팬들 사이에서도 ‘멘붕(멘털 붕괴)’을 호소하는 팬들이 적지 않을 만큼 깜짝 놀랄 소식이었습니다. 그만큼 한화 팬들이 유창식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겁니다.
○ 7억 팔
유창식은 광주일고 3학년이던 2010년 제6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29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초고교급 선수’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그를 데려올 확률이 가장 높았던 한화에서는 지명 이전부터 스카우트 팀장이 유창식을 ‘모시고’ 광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함께 관람할 정도로 공을 들였습니다. 지명 1순위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유창식에게 관심을 보이던 메이저리그 팀이 있어 마음을 굳히려는 작업이었죠.
한화는 결국 프로야구 사상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계약금인 7억 원을 안긴 건 물론이고 팀의 전설 구대성(46)이 달던 등번호 15번도 유창식에게 물려줬습니다. 모든 게 좋았고, 많은 한화 팬들은 ‘류유상종(柳柳相從)’을 꿈꿨습니다. 류현진(28·현 LA 다저스)과 유창식이 만나면 만년 하위권에 처져 있던 팀 성적도 달라질 것으로 믿었던 겁니다.
그러나 유창식은 입단 후 4년간 등번호 15번에 걸맞은 활약을 거의 보이지 못했고, 올 시즌을 앞두고 이용규(30)와 등번호를 맞바꿨습니다. 광주일고 시절 달던 1번을 되찾은 겁니다. 맞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 크로스 스탠스
고교 시절 유창식은 ‘크로스 스탠스’로 공을 던졌습니다. 2013년까지 LG에서 뛰었던 주키치(33)처럼 공을 던지면서 양발이 교체되는 투구 폼이죠. 이 폼으로 공을 계속 던지면 부상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있었고, 유창식은 프로 입단 직전 스스로 폼을 고쳤습니다. 프로에 와서도 제구력이 흔들릴 때마다 더 나은 해법을 찾자며 적잖게 투구 폼을 바꿨습니다.
그 결과 유창식은 고교 때와 전혀 다른 투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공이 나오지 않으니 마운드에서도 조급해하는 게 당연한 일. 한번 맞기 시작하면 ‘안타 자판기’가 되기 일쑤였고, 눈 깜짝할 새 ‘볼넷 머신’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등번호 1번을 되찾은 올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선발 등판한 3일 경기에서도 정근우의 실책이 나오자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으로 공을 던지다 만루홈런을 얻어맞고 마운드에서 내려왔습니다. 그게 결국 유창식이 한화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표정이 됐습니다.
결과론이지만 아쉽습니다. 꼭 크로스 스탠스를 포기해야 했을까요? 단점을 줄이기보다 장점을 살리는 지도 방법은 없었던 걸까요? 그리고 궁금합니다. 과연 유창식은 KIA에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초고교급 투수’로 불리던 유망주가 입단 5년 동안 부진하다가 갑자기 리그 정상급 투수가 된 사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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