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愛] 삼성 불펜포수 변선웅 씨 “불펜포수도 비전있는 시대…내가 개척자가 될 것”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5월 8일 05시 45분


KIA에서 12년간 일하던 베테랑 불펜포수 변선웅 씨는 올 시즌을 앞두고 삼성에 스카우트됐다. 변 씨는 “요즘은 불펜포수도 비전이 생기고 있다”며 “내가 새로운 길을 더 개척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구|배영은 기자
KIA에서 12년간 일하던 베테랑 불펜포수 변선웅 씨는 올 시즌을 앞두고 삼성에 스카우트됐다. 변 씨는 “요즘은 불펜포수도 비전이 생기고 있다”며 “내가 새로운 길을 더 개척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구|배영은 기자
■ 삼성 불펜포수 변선웅 씨

불펜포수 입단 후 2009년 프로선수 기회
불의의 교통사고로 다시 불펜포수 복귀
투수들 훈련 파트너로 컨디션까지 챙겨
“프런트·전력분석·지도자 못할 것 없죠”


삼성은 올 시즌을 앞두고 남몰래 전력을 보강했다. 선수를 영입한 것이 아니다. KIA에서 12년간 일하던 베테랑 불펜포수 변선웅(30) 씨를 대구로 데려왔다. 아마도 불펜포수가 다른 팀의 ‘러브콜’을 받고 이적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변 씨의 이적과 함께 불펜포수의 위상에도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 첫 기회, 조범현 감독의 관심

변 씨는 2003년 KIA에 불펜포수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매년 신고선수 테스트를 봤다. 번번이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08시즌을 앞둔 스프링캠프 때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그는 “청백전을 해야 하는데 포수들이 다 다쳐서 뛸 선수가 없었다. 조범현 감독님이 ‘너 한 번 나가봐라’ 하셨다”며 “그때 어깨가 괜찮으니까 잘 보셨던 것 같다. ‘선수 한 번 시켜주겠다’면서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연습도 많이 해놓으라고 주문하셨다”고 귀띔했다. 조 감독은 훈련 때는 물론 경기 중에도 변 씨에게 종종 투수들의 컨디션을 묻곤 했다. 불시에 던져지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변 씨도 좀더 투수들의 공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살피게 됐다. 그리고 2009년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조 감독은 약속대로 변 씨를 신고선수로 입단시켰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불운도 겹쳤다. 첫 캠프에서 펑고를 받다가 발목이 꺾인 것을 시작으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를 다치고 손목 수술까지 했다. 2년 동안 아프기만 하다 세월이 흘렀고, 조 감독의 퇴진과 함께 변 씨는 다시 불펜포수로 돌아갔다. 그는 “힘들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프로선수가 왜 프로인지 알게 됐고, 야구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선수들의 고충도 더 깊이 알면서 성숙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 또 다른 기회, 류중일 감독의 손짓

2012년의 어느 날, KBO에서 뜻밖의 전화가 왔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에 훈련지원요원으로 참가하라고 했다. 대표팀 사령탑은 삼성 류중일 감독. 보통은 삼성의 불펜포수가 따라가는 것이 관행이다. 알고 보니 KIA 코치였던 이순철 KBO 기술위원이 류 감독에게 변 씨를 추천했다. 변 씨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따라가서 그냥 늘 하던 대로 ‘파이팅 넘치게’ 열심히 했다”며 “대표팀은 훈련량이 팀보다 많지 않아서 배팅볼을 완투하기도 했다. 그때 류 감독님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쑥스러워했다.

실제로 류 감독은 2014시즌이 끝난 뒤 변 씨를 삼성으로 불렀다. 변 씨는 “다른 사람들은 불펜포수가 뭐가 중요하다고 스카우트까지 하는지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라며 “류 감독님이 그렇게 훈련 과정의 세심한 부분까지 중요하게 여기시는 걸 보니 왜 삼성이 강한지 알 것 같았다”고 고마워했다.

● 점점 달라지는 불펜포수의 위상, “새 길을 열고 싶다”

변 씨도 불펜포수 초기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경기 때 잘 못 던지고 내려와 괜히 불펜포수에게 화풀이를 하는 투수도 많았고, 배팅볼이 안 좋아서 경기가 꼬였다고 손가락질하는 타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불펜포수라는 직업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 야구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있다. “예전에는 불펜포수가 아르바이트생이나 볼보이와 같은 일로 취급됐다. 그러나 우리는 구단과 정식으로 계약해 엄연히 같이 훈련에 참가하고, 선수들의 ‘훈련 파트너’를 이루는 직업”이라며 “단지 공만 받는 게 아니라 투수들의 구위와 컨디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좋았을 때의 모습을 기억했다가 그 투수의 밸런스가 흐트러졌을 때 어떤 부분이 안 좋은지 얘기해줄 수도 있어야 한다. 마치 ‘두 번째 투수코치’처럼 투수와 신뢰를 쌓는 것도 중요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수명도 길어졌다. 한때는 프로 진입에 실패한 선수들이 군 입대 전 2∼3년 정도 거쳐 가는 일로 여겨졌다. 지금은 기술과 노하우만 쌓이면 30대 초중반까지 충분히 할 수 있다. 변 씨는 “여전히 열악하기는 하지만, 요즘은 불펜포수도 비전이 생기고 점점 처우도 좋아지는 것 같다. 나중에 나이를 더 먹고 더 이상 못 하게 되면, 스스로 하기에 따라 프런트나 전력분석, 더 나아가 지도자까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가능성이 많지는 않더라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내가 새로운 길을 더 개척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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