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문 감독이 말하는 ‘불펜 야구’의 원인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5월 14일 05시 45분


양상문 감독. 스포츠동아DB
양상문 감독. 스포츠동아DB
■ 불펜 혹사 논란의 핵심은 5회 못 버티는 선발에 있다

어깨 보호 명분으로 갈수록 이닝 소화력 떨어져
필승조 등장·타자들 기량 향상도 조기 강판 원인
타자가 치고 싶은 곳에 던져 맞혀 잡는 것도 요령

최근 야구계의 이슈는 한화의 불펜투수 혹사 논란이다. 김성근 감독의 투수기용법과 관련해 다양한 생각이 오가고 찬반의견도 팽팽하다. 이 논쟁의 결론은 지금 섣부르게 내릴 수 없다. 시즌 후 한화 불펜투수들이 어떤 성적을 만들었고, 다음 시즌 베테랑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하다.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인 가운데 감독의 결정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은 품을 수 있겠지만,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결례일지도 모른다. 감독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한화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최근 우리 야구에선 불펜투수의 활용이 차츰 확대되고 있다. 그와 반비례해 선발투수들이 소화해내는 이닝은 짧아지고 있다. 이제 투구수 100개를 선발투수가 책임져야 하는 최대치로 여긴다. 80∼90개에서도 과감하게 투수교체가 이뤄진다. 선발투수가 책임지는 이닝도 차츰 앞으로 당겨지고 있다. 20세기에는 100개의 공이면 7회까지 버티곤 했지만, 지금은 특별한 투수를 제외하고는 6회 또는 5회에 이미 100개에 육박한다.

최근의 현상과 관련해 LG 양상문 감독이 나름대로 이유를 분석했다. 양 감독은 3가지 원인을 들었다. 첫 번째는 훈련방식을 포함한 지도자들의 문제다. “투수들이 더 많은 이닝을 던지도록 어깨를 단련시키고,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을 갖추도록 만들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피칭을 통해 더 단련시키고 강화해야 할 어깨를 ‘어깨 보호’라는 명분으로 약하게 만들다보니 요즘 투수들이 예전 투수보다 지구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봤다. 20세기에 선수생활을 했던 투수 출신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두 번째는 필승조의 등장이다. “선발투수보다 더 확실히 경기를 이겨주는 불펜투수들이 버틴다면, 당연히 그 선수들을 감독이 선택한다”고 밝혔다. 단 1%라도 이길 확률이 높은 곳으로 감독은 결정을 내린다. 진리다.

세 번째는 타자들의 기량 향상이다. 요즘은 어떤 타자도 쉽게 아웃을 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투수들이 아웃카운트를 늘려가기가 훨씬 힘들어졌다. 게다가 다양한 웨이트트레이닝과 반발력이 커진 배트와 공 때문에 투수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3∼4점차도 여차하면 뒤집어지기 때문에 경기 중반 이후에는 힘이 떨어지는 선발투수에게 더욱 미련을 두지 않고 결단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투수 이론가답게 양 감독은 문제해결의 방법도 제시했다. NC 손민한과 나눴던 얘기를 들려줬다. 현재 KBO리그에서 활약하는 투수들 가운데 가장 적은 투구수로 이닝을 소화하는 손민한의 투구 비법이었다. “(손)민한이는 타자가 치기 싫어하는 코스로 공을 던지지 않고, 타자가 치고 싶어 하는 곳에 공을 던진다. 그 대신 그 공의 코스를 좀더 바깥으로 빼거나, 스피드 또는 변화구의 각도를 조절해 타자들이 배트 중심에 맞히지 못하게 만든다”고 귀띔했다.

양 감독의 입을 통해 밝혀진 손민한의 피칭 기술을 들으면서 오버랩되는 선수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 샌디 쿠팩스다. 쿠팩스는 “내가 던지고 싶어 하는 곳이 아니라, 타자가 치고 싶어 하는 곳에 공을 던지면서 나는 진짜 투수가 됐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회자되는 피칭 관련 명언 가운데 하나다.

잠실|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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