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진아 씨의 도박 사건은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진 뒤에도 위력을 잃지 않았던, 그래서 음모론으로까지 의심받았던 속보 경쟁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태 씨의 ‘눈물의 기자회견’에 이어 시사저널 USA 대표의 잠적 기사가 마지막이었다. 사건은 발생했지만 결론은 없는 이상한 보도. 스포츠로 치면 개인기록은 있되 승패는 없는 경기였다.
도박은 형법에 규정된 범죄 행위다. 친고죄가 아니어서 미국 교포가 운영하는 매체가 꼬리를 내렸다고 태 씨의 혐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왜 그럴까. 도박에 대한 고무줄 잣대 탓이다. 우리는 세계 어느 카지노라도 가면 범죄자가 될 위험에 노출된다. 반면 강원랜드에선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애국자’가 된다. 너무 자주 가면 출입이 금지되거나, 도박중독 예방센터를 찾으면 되지 형사소송을 당할 일은 없다.
해외 카지노도 상습, 고액 도박이 아니면 괜찮긴 하다. 그러나 상습, 고액이란 것은 객관적 기준이 아니어서 코에 걸면 코걸이다. 규제가 법리가 아닌 판단의 영역으로 넘어간 경우다. 따라서 해외 도박은 문제를 삼는다면 대체로 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제재한다.
스포츠 칼럼에서 주제넘게 웬 도박 얘기인가 하겠다. 화제를 바꾸면 도박도 바둑처럼 언젠가는 스포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바둑은 2009년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단체가 됐다. 이듬해 광저우 아시아경기, 올해 소년체전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바둑과 도박은 스포츠인 듯, 아닌 듯한 점에서 닮은꼴이다.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하고, 전술로 승부를 가리고 리그를 하며, 감동과 드라마가 있고 많은 팬이 즐긴다는 점에서 분명 스포츠다.
반면 여느 스포츠와는 달리 운동역학은 무시된다. 손가락 끝의 미세한 변화가 신체 움직임의 전부로 보이는 사격조차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바둑과 도박은 폼이 나쁘다고 기량이 변하진 않는다.
도박이 바둑과 달리 아직 음지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매번 재물을 걸며, 우연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 도박사는 재물이 아닌 포인트를 건다. 단기 승부는 우연의 산물일 수 있지만 장기 승부는 실력에 의한 필연으로 귀결된다.
사실 터놓고 얘기하면 상대가 있는 스포츠라면 사행성과 우연성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투수가 던지는 공이나, 공격수의 드리블은 속이기 위한 행위다. 좋은 타구가 무조건 안타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결국엔 시즌이 끝난 뒤 가장 잘 속인 선수가 부와 명예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태 씨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도박도 스포츠로 양성화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필자가 좋아하는 ‘사모곡’이 태 씨가 도박을 했다고 해서 애간장을 덜 태우지는 않을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