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남북 정규군, 전투복 대신 운동복 입고 ‘육군5종’ 대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30일 03시 00분


10월 경북 문경서 열리는 ‘제6회 세계군인체육대회’

‘제발 들어가라.’ 육군5종에서 선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종목이 정밀투척이다. 수류탄 형태의 투사물을 외부 지름 4m, 내부 지름 2m의 원형 표적 안에 넣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고은 중사가 육군3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정밀투척을 하고 있다.영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제발 들어가라.’ 육군5종에서 선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종목이 정밀투척이다. 수류탄 형태의 투사물을 외부 지름 4m, 내부 지름 2m의 원형 표적 안에 넣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고은 중사가 육군3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정밀투척을 하고 있다.
영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아시나요?”

올림픽과 월드컵, 아시아경기에 익숙한 국민들에게는 다소 낯선 대회다.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경북 문경시에서 제6회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린다. 1995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개최된 뒤 4년마다 열리는 ‘군인 올림픽’이다. 110개국에서 9000여 명이 참가하는 빅 이벤트다. 28개 올림픽 종목(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준) 중 축구와 육상, 수영 등 19개 일반 종목에 육군5종, 공군5종, 해군5종, 오리엔티어링, 고공낙하 등 군사 종목 5개를 포함해 24개 종목이 열린다. 한국은 그동안 이 대회에 5차례 출전해 17, 5, 7, 16, 6위를 기록했다.

장애물수영은 영법 제한 없이 50m를 헤엄치며 장애물 4개를 넘어야 한다. 한 남군이 영천실내수영장에 마련된 장애물수영 코스에서 장애물을 넘고 있다.
장애물수영은 영법 제한 없이 50m를 헤엄치며 장애물 4개를 넘어야 한다. 한 남군이 영천실내수영장에 마련된 장애물수영 코스에서 장애물을 넘고 있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종목은 육군5종이다. 사격과 장애물달리기, 장애물수영, 투척, 크로스컨트리로 구성된 육군5종은 지상 전투에서 각종 악조건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한국이 이 종목에 처음 출전하는 데다 올 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국방체육만큼은 남조선 괴뢰들에게 져서는 안 된다. 일당백의 군인정신으로 무장해 무조건 우승을 쟁취하라”는 지시를 전군에 내리며 문경 대회 참가를 결정해 더욱 관심을 끌게 됐다. 북한은 육군5종에 출전한다. 한국은 육해공5종에 모두 출전한다. 결국 육군5종에서 남북 대결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북한 정규군이 대한민국 땅을 밟고, 그것도 경기장으로 사용되는 한국 군부대에서 인공기를 달고 경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남과 북이 육군5종에서 제대로 군인으로 ‘맞짱’을 뜨게 돼 전 세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국은 남녀 모두 육군5종 강국은 아니다. 반면 북한은 여군이 강하다. 지난해까지 61회를 치른 세계군인 육군5종선수권대회에서 북한 여자는 단체 2회, 개인 1회 우승을 차지했다. 육군5종의 세계적 강국은 남녀 모두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선수권에서 남자는 단체 24회, 개인 14회 우승을 차지했고 여자는 단체 17회, 개인 18회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은 제5회 세계군인체육대회 육군5종에서 남녀 단체 및 개인을 휩쓸었다.

한국은 2011년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유치했지만 육군5종은 2013년 5월에야 팀이 구성됐다. 종목에 대한 정보와 시설이 하나도 없어 종목담당관인 김판술 소령(46)이 여러 대회를 참관하며 찍은 동영상을 보며 각종 운동 시설을 직접 만들어 훈련했다. 모든 시설이 갖춰진 것은 지난해 9월이다. 지난해 초부터 문경 체육부대에서 훈련하다 7월부터 장애물경기장이 만들어진 경북 영천 육군3사관학교에서 ‘제대로’ 훈련하고 있다.

이런 우여곡절 탓에 대한민국 육군5종 대표팀 1기 멤버(2013년 5월)로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김범규 중사(29)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코치인 권오운 상사(40), 하선애 상사(33)와 함께 각 종목을 연구하고 시설을 만들어 훈련했다. 권 상사는 “처음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훈련이 크로스컨트리였다. 초원을 그냥 달리면 됐기 때문이다”라며 웃었다.

남녀 군인 선수들이 사로에서 사격을 하고 있다. 사격은 300m 떨어진 표적에 1차 정밀사격(10분간 10발)과 2차 속사(1분간 10발)를 해 점수를 낸다.
남녀 군인 선수들이 사로에서 사격을 하고 있다. 사격은 300m 떨어진 표적에 1차 정밀사격(10분간 10발)과 2차 속사(1분간 10발)를 해 점수를 낸다.
권 상사는 육상과 사격 선수 출신이라는 이유로 코치가 됐다. 강원 정선중고교와 단국대를 거쳐 정선군청에서 실업 선수로 활약했다. 1996년 부사관으로 임관하며 은퇴해 군인으로 살았지만 세계군인체육대회를 계기로 다시 ‘스포츠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렵게 훈련하면서 낙오자도 많이 생겼다. 어깨와 허리, 무릎 등 부상으로 줄줄이 하차한 것이다. 사실상 전투 때 활용할 수 있는 종목이다 보니 몸을 무리하게 써야 할 때가 많아 부상이 발생한다. 게다가 종목에 대한 훈련 정보가 없다 보니 부상이 더 늘었다. 현재 훈련 중인 남자 8명, 여자 5명으로 구성된 선수단도 대부분 부상 한두 가지는 안고 훈련하고 있다.

군인 남녀 태극전사들은 일부를 빼놓고는 대부분 군대에 와서 스포츠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초짜들’이다. 특전사 출신인 김범규 중사는 학창시절 유도 등 스포츠를 즐겨 하다 대회 소식을 듣고 자원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대한민국 군인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떨치고 싶단다. 한국에선 김 중사가 가장 베테랑이다. 2013년 브라질에서 열린 제60회 육군5종선수권대회를 참관하러 갔다가 대회 조직위원회 측의 배려로 직접 출전하기도 했다. 지난해 영천에서 열린 제61회 대회에도 출전했다.

여군들이 장애물달리기에서 장애물을 넘고 있다. 장애물달리기는 500m S자형 코스를 달리며 장애물 20개(여자 16개)를 넘는 경기로 선수들의 피를 말리는 종목으로 유명하다.
여군들이 장애물달리기에서 장애물을 넘고 있다. 장애물달리기는 500m S자형 코스를 달리며 장애물 20개(여자 16개)를 넘는 경기로 선수들의 피를 말리는 종목으로 유명하다.
김 중사는 다른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장애물달리기와 장애물수영이 장기다. 유도를 해 순발력이 좋아서다. 사실 장애물달리기는 가장 악명 높은 종목이다. 500m S자형 코스를 달리며 장애물 20개(여자 16개)를 넘어야 한다. 단거리와 중거리 사이의 달리기로 지구력과 순발력을 겸비해야 하며 장애물을 넘을 민첩성까지 갖춰야 한다. ‘스파이더맨’이 별명인 김 중사는 2분27초가 최고기록이다.

예상외로 선수들이 힘들어하는 종목이 투척이다. 투척은 수류탄 형태의 투사물을 정확히 던지는 정밀투척과 멀리 던지는 장거리투척으로 나뉜다. 정밀투척은 3분간 1개 표적에 4발씩, 4개 표적에 총 16발을 투척해 표적 원 안에 넣어 점수를 받는다. 장거리투척은 1분30초간 3회를 던져 최장거리 기록을 점수화한다. 선수들이 힘들어하는 게 정밀투척. 외부 지름 4m, 내부 지름 2m 표적에 여자는 15m, 20m, 25m, 30m, 남자는 20m, 25m, 30m, 35m 거리에서 던져 넣어 점수를 받는다.

2013년 7월 대표팀 2기로 합류한 조은비 중사(28)는 “투척은 컨디션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 그래서 힘들다”고 말했다. 장애물달리기와 크로스컨트리 등은 힘들긴 하지만 훈련으로 실력을 키울 수 있는데 투척은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점수가 들쭉날쭉한다는 얘기다.

조 중사는 부산 광무여중 때부터 여군을 꿈꾸다 군인이 된 ‘준비된 여전사’다. 우연히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고 군복을 입은 생도들이 너무 멋있어 가톨릭상지대 부사관학과에 입학해 2006년 임관했다. 평소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서 뛰는 선수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다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선수로 자원했다.

조 중사는 “막상 훈련을 시작하고 나선 힘들었다. 하지만 태극기를 달고 대회에 출전하면서 자부심도 느꼈다. 친구들도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조 중사는 지난해 영천 육군5종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사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사격은 300m 엎드려쏴(복사)다. 일반병이 훈련소 사격 때 K-2 소총으로 멀리 쏘는 250m보다 50m 더 멀다. 1차 정밀사격은 10분간 10발을 쏘고, 2차 속사는 1분간 10발을 쏘아 점수를 매긴다. 사격은 모니터에 결과가 바로 표시되는데 조 중사는 쏘는 족족 10점이었다.

조 중사는 처음 군인이 된다고 했을 때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지금은 “내 딸이 최고”라며 자랑하고 다닌단다. 조 중사는 “세계군인체육대회 육군5종엔 처음 출전하지만 꼭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남녀 전사들이 크로스컨트리를 하고 있다. 크로스컨트리는 산악 지형을 달리는 종목으로 남군은 8km, 여군은 4km를 달린다.
남녀 전사들이 크로스컨트리를 하고 있다. 크로스컨트리는 산악 지형을 달리는 종목으로 남군은 8km, 여군은 4km를 달린다.
이고은 중사(30)는 축구 선수 출신이다. 경기 이천 설봉중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서울시청에서 뛰었고 2009년 부산 상무로 옮기면서 군인이 됐다.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 출전한 박은선 권하늘과 함께 운동했다. 지난해 2월 은퇴를 고민하고 있을 때 상무의 훈육관이 코치인 하선애 상사에게 얘기해 육군5종 선수로 ‘전업’했다. 축구에서 90분 풀타임을 뛰는 체력이 뒷받침돼 크로스컨트리와 장애물달리기가 장기다. 산악지형 마라톤인 크로스컨트리는 남자는 8km, 여자는 4km를 달린다. 이 중사는 수영을 해본 적이 없어 장애물수영이 가장 힘들단다. 이 중사는 “축구를 그만두며 둥지를 떠난 새처럼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두려움도 느꼈다. 축구는 단체 종목이고 육군5종은 개인 종목이다. 혼자 해야 한다. 하지만 축구를 해서인지 금방 적응했고 동료들과 어울리며 군인정신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특전사 출신 김진화 중사(29)는 ‘만능 스포츠인’이다. 5종목을 다 잘한다. 운동선수 출신도 아니고 군에 임관하면서 스포츠를 즐기다 육군5종을 시작해 ‘일가’를 이룬 경우다. 그는 “장애물달리기가 가장 힘들지만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은 종목이다”라고 말했다.

운동선수 출신도 있다. 장애물수영이 주 종목인 황인수 중사(24)와 황준혁 상병(25)은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황 중사는 초등학교 때 수영을 했고 충남체고에서는 중장거리 선수를 했다. 철인3종도 해 육군5종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황 상병은 한국체대에서 근대5종(승마, 수영, 펜싱, 권총사격, 크로스컨트리)을 했다. 장애물수영은 영법 제한 없이 50m를 헤엄치며 수중 장애물 4개를 통과해 기록으로 순위를 가린다. 크로스컨트리가 주 종목인 신상민 일병(29)은 한양대 중장거리 육상 선수 출신.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도 출전했고 지금도 전국체육대회 일반부에서 1∼4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철각이다.

2015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는 이제 4개월여 남았다. 육군5종. 시작한 지 2년 됐지만 남녀 전사들의 하고자 하는 정신력과 눈빛만큼은 ‘금메달감’이다. 선수들은 오전 5시에 기상해 1시간 달리기를 하고 오전 9시부터 11시, 오후 2시부터 4시, 7시부터 9시까지 하루에 총 7시간의 강훈련을 소화하며 ‘군인들의 스포츠 제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남녀 모두 상위권 입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천=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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