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미래의 에이스’ 위해 식단 특별관리 몸집 키우기 위해 밤에 치킨·탄산음료까지 “투수는 체지방이 적당히 있어야 오래 던져” 몸무게 82kg 이상·배럴 체스트 집중 강화
예전 OB(현 두산) 관계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1986년 해태로 트레이드했던 한대화 얘기가 나오자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리는 한대화가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기 바란다. 한대화가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트레이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우리는 죄인이 된다”고 했다. 1986년 1월 29일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해태와 OB의 2대1 트레이드(양승호 황기선↔한대화)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트레이드는 야구의 신(요즘 회자되는 그 야신이 아니다)이 만든 장난에 따라 울고 웃는다. 그것이 트레이드의 묘미다.
이번 시즌 화제가 된 것은 5월 2일 신생팀 kt와 롯데가 했던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다. 9명이 오고간 거래에서 핵심선수는 투수 박세웅과 포수 장성우라고 했다. 지금 kt는 함께 데려온 하준호 덕분에 표정이 밝다. 롯데도 좋은 불펜투수 이성민을 데려왔지만 장성우가 kt에서 하는 만큼 박세웅이 해주지 못해 아쉬울 것이다. 물론 지금 누가 잘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야구는 몇 달 혹은 한 시즌의 성과로 트레이드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 육성 시나리오와 멀리 돌아가는 길
최근 롯데 코칭스태프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팀을 옮긴 뒤 기대 속에 여러 차례 선발등판 기회를 줬던 박세웅이 부진한 뒤였다. 원인을 찾았다. 아직 어린 선수여서 기다려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금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투수가 프로무대 경험이 많은 타자를 압도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것은 20세기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류현진은 예외였다. 육성의 시간동안 박세웅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놓고 롯데 코칭스태프는 선택을 했다. 2군에 내려 보내는 대신 1군에 함께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1992년 고졸 루키로 204.2이닝을 던져 17승(9패) 6세이브를 기록했던 염종석 투수코치는 “2군은 2군이다. 아무리 그곳에서 잘해도 1군에 올라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유망주가 그곳에 있으면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목표를 잃어버릴 우려도 있다”고 했다. 지금 각 구단이 퓨처스리그에 많은 시간과 노력, 인원을 투자해서 선수들을 육성시키고 있지만 1군과 2군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차이는 kt 조범현 감독이 잘 안다. 요즘 많은 패배를 통해 1군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염종석 코치는 “고등학교 때부터 박세웅이 많이 던졌고 kt에서도 훈련을 많이 해 지친 상태다. 당분간은 쉬게 하면서 힘부터 기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토너먼트대회에 익숙한 어린 선수들이 처음으로 맞는 페넌트레이스를 소화하기는 어렵다. LG 양상문 감독도 이런 점을 고려해 2년차 임지섭에게 특별한 관리를 해주고 있다. “앞으로 10년 이상을 써야하는 선수다. 이런 선수들에게는 1군에서 7∼8경기 던지면 2군에 보내서 충분히 쉬도록 한 다음에 다시 올려야 탈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깨에 탈이 난 류현진도 이런 과정을 거쳤으면 다른 결과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때로는 야구에서 필요하다. ● 증량 프로젝트와 문희수의 식탐
요즘 박세웅은 많이 먹는다. 염 코치의 지시로 밤에 치킨도 먹고 탄산음료도 먹는다. 운동선수가 삼가야 하는 음식이 치킨이나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라고 알려져 있다. 왜 그런 음식을 먹이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여러 가지를 먹이지만 투수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닭 가슴살 같은 음식만 먹여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몸의 근육을 크게 만들어야 하는 보디빌더와 투수의 몸은 다르다는 것이 염 코치의 생각이다. “투수는 체지방이 18∼20% 정도 돼야 공을 오래 던져도 지치지 않는다. 적당히 지방도 있고 배도 약간은 나와야 좋다”고 했다. 롯데의 목표는 박세웅을 선발요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183cm, 75kg의 체구를 82kg 이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증량을 위해 어머니도 거들었다. 박세웅이 부산에 오면 대구의 어머니가 와서 요리를 해주기로 했다. 어떤 음식보다 좋은 것은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집밥이다. “투수는 어깨도 벌어지고 몸집이 있어야 공에 힘이 생기고 오래 던진다”고 염 코치는 믿고 있다. 그 이론을 실천해준 투수가 문희수였다. 1984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해태에 입단한 문희수는 1988년에 고졸 투수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최우수선수)가 됐다. 그는 프로데뷔 4년차 때 식탐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음식을 먹으며 체중을 늘렸다. 타자를 힘으로 제압하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것이었다. 웨이트트레이닝 개념이 도입되기 전에 선수 스스로가 이런 생각을 해냈다. 그해 빙그레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 피칭 뒤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 시리즈 등판이 어려워진 선동열을 대신해 3·6차전에서 완봉승과 완투승을 거둔 문희수의 피칭은 푸짐한 음식과 식탐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 1992년의 염종석과 배럴 체스트
롯데에 2번의 우승을 안겨준 사람은 강병철 감독이다. 그의 야구를 놓고 말들이 많지만 롯데에 그만큼의 성공을 가져다준 사람도 없다. 그는 1984년 고(故) 최동원, 1992년 염종석을 앞세워 부산 팬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강 감독이 즐겨 쓰는 단어가 덩치였다. 체구가 작은 선수는 아무리 야구를 잘해도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유난히 덩치 큰 선수를 좋아했다.
1992년 강 감독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염종석의 덩치와 싱싱한 힘으로 준플레이오프(삼성전)와 플레이오프(해태전)를 돌파한 뒤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까지 물리쳤다.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염종석의 피칭은 역대 고졸 루키가 보여줬던 피칭 가운데 최고였다. 최동원∼염종석으로 이어지는 롯데의 안경 쓴 에이스가 지닌 공통점은 가슴이다.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두꺼웠다. 야구선수는 어깨가 벌어진 것보다는 앞뒤로 가슴 폭이 큰 체형이 좋다는 것이 정설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를 ‘배럴 체스트(barrel chest)’라고 부른다. 술통처럼 생긴 몸통을 말한다. 베이브 루스가 대표적이다.
염 코치는 박세웅을 이렇게 평가했다. “멘탈도 좋다. 저 나이에 저렇게 잘 던지는 투수도 많지 않다. 잘 될 것이다”고 했다. 에이스 없이는 한국시리즈 우승은 힘들다. 롯데는 박세웅이라는 보물을 얼마나 잘 육성하는지에 미래가 달렸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증량과 육성 프로그램은 성공해야 한다. 블록버스터 트레이드에 관여했던 롯데 관계자 모두 박세웅과 장성우의 은퇴 전까지 가슴 졸이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