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NC전 6이닝 무실점 데뷔 첫 선발승 어깨통증으로 빠진 니퍼트 빈자리 메워 한용덕 투수코치 “선발에 적합한 투수”
그 누가 봐도 한쪽으로 확연하게 기우는 승부. 그러나 때로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다. 13일 잠실 NC전에 두산 선발투수로 등판한 좌완 허준혁(25·사진)이 바로 그 ‘다윗’이었다.
허준혁은 이날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가 어깨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자리에 일명 ‘땜질’ 선발로 등판했다. 결과는 6이닝 4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데뷔 첫 선발승. 3명의 후보 가운데 그를 선택했던 김태형 감독조차 이 정도까지 호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상대 선발투수가 NC 에이스인 에릭 해커였으니 두 배로 값진 결과였다. 김 감독이 14일 경기에 앞서 “허준혁을 추천해준 한용덕 투수코치와 이상훈 2군 투수코치에게 고맙다”고 말한 이유다.
정작 허준혁은 그 누구보다 담담했다. 그에게 ‘최고의 날’은 13일 경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4년 11개월 22일 만에 따낸 ‘승리투수’의 훈장도 지난 시즌 개막전의 설렘을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허준혁은 “지난해 개막전 1군 엔트리에 포함됐을 때가 사실 진짜 기뻤다. 개막전이라고 팬들에게 선수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소개할 때 참 좋았다”며 “롯데 시절에도 1군에서 개막을 맞은 적이 있지만, 작년에는 내가 팀을 옮기고 난 후(2013시즌 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라서 기분이 남달랐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모두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승리지만, 스스로는 이제 출발선에 섰을 뿐. 그래서 더 들뜨지 않는다. 허준혁은 경기가 끝난 뒤 2군에서 동고동락했던 이상훈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운드에선 건방져질 필요가 있다. 네가 공을 던져야 경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마라’던 이 코치의 조언이 떠올라서였다. 이 코치는 허준혁에게 “하루 잘 던졌다고 방심하지 말고 다음 경기를 생각하라”고 말하며 고삐를 조였다. 허준혁도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금까지 허준혁은 주로 왼손타자를 상대하는 불펜투수였다. 이제는 좌타자와 우타자를 모두 고르게 잡아내는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고 싶어졌다. 그는 “한때는 불펜이 매력 있었지만, 올해 2군에서 꾸준하게 선발로 던지다보니 길게 던지는 선발투수의 매력을 느꼈다”며 “우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한동안 안 던졌던 포크볼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선발에서 내 길을 찾아보고 싶다”는 포부를 공개했다. 한용덕 코치도 그 결심을 지지한다. 지난해 사이드암 변신을 시도했던 허준혁이 올해 다시 팔각도를 올리고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한 코치는 “허준혁은 볼 스피드만 빼면 선발에 적합한 모든 것을 다 갖췄다. 제구도 좋고, 변화구도 다양하고, 견제능력도 좋다”며 “다음 등판에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기회는 한 번 더 온다. 허준혁은 친정팀 롯데와의 주말 홈 3연전(19∼21일)에서 또 다시 선발등판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꼭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