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 김민길의 반전 드라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6월 17일 05시 45분


김민길이 올해부터 도입된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 1,2차 대회를 모두 휩쓸며 새로운 경정 강자로 떠올랐다. 김민길은 2차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 우승 뒤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며 몸을 낮췄다.
김민길이 올해부터 도입된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 1,2차 대회를 모두 휩쓸며 새로운 경정 강자로 떠올랐다. 김민길은 2차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 우승 뒤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며 몸을 낮췄다.
■ 새로운 경정 강자로 떠오른 김민길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 연달아 우승
지난해 랭킹 46위서 올해 랭킹 9위로
“운이 좋았다…그랑프리대상도 욕심”


“지난번(1차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이나 이번이나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 그동안 큰 경주에서 우승한 선배들이 부러웠다.”

김민길(36·8기)은 여전히 겸손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무명이 아니다. 아니 새로운 강자의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몸을 낮췄다. 그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큰 경주에서 우승한 선배들’이 더 이상 남이 아니었다. 김민길,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됐다.

낭중지추라 했던가. ‘주머니 속의 송곳’이 또 다시 주머니를 뚫고 나왔다. 김민길이 지난 11일 열린 제2차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 시상식에서 맨 꼭대기에 올랐다. 지난 달 14일 열린 1차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 우승에 이어 대회 2연패다. 올 시즌 랭킹 9위. 지난해 46위에서 수직상승했다.

● “키·몸무게 등 경정에 최적화된 선수…공간 파고드는 능력 탁월”

김민길이 1차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에서 우승할 때만 해도 ‘무명 반란’ ‘파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엔 누적 성적 상위 12명에 들지 못해 출전자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3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전자 명단에 있던 신동길(37·4기)이 진로방해로 출전자격이 박탈돼 어부지리로 진출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이 준 운을 놓치지 않았다. 한달음에 우승 앞으로 성큼 달려갔다. 경정 입문 7년 만에 이룬 생애 첫 우승이었다. 김민길도 “처음 우승이라 얼떨떨하다”고 했다. 우승한 뒤에는 형 아내 스승 동기 등 많은 얼굴들이 떠올라 말을 잇지도 못했었다.

‘무명’이란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였을까. 김민길은 ‘무명’‘운’이 아닌 ‘실력’이라고 외치듯 큰 경주에서 연거푸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렇다. 그것은 실력이었다. 후보생 시절 김민길을 가르쳤던 최동훈 씨는 “후보생 시절 두각을 보이지 못했지만 최근 공간을 파고드는 경기운영 감각이 좋아졌다. 지난해는 경정훈련원이 있는 영종도로 이사할 만큼 노력하는 선수다. 키(171cm)가 크고 몸무게(57kg)도 적절해 경정에 최적화된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다. 앞으로 큰 활약을 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김민길은 대기만성의 선수인 것이다.

● 거제 조선소 판넬공에서 빅매치 주인공으로

김민길은 거제도 ‘촌놈’이다. 거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특별한 꿈은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수산고등학교(현 거제 해양고)에 진학했다. 어릴 적부터 뛰어놀고 꿈을 꾸던 시절, 그의 곁엔 바다가 있었다. 바다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하면 어떨까 해서 수산고를 택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면서 ‘바다 일’이 자신과 꼭 맞는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뒤 군대에 갔다. 백마부대였다. 군대에서 ‘깡다구’를 몸에 익혔다. 제대. 그러나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가구 만드는 일도 해봤다. 대우조선소에도 다녀봤다. 그곳에서 판넬 제작을 담당했던 기술자였다. 그러나 그리 오래 정착하지 못했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다 ‘눈에 번쩍 띄는’ 것을 봤다. 2000년대 초 거제 구조라해수욕장에서 열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배 모터모트대회’였다. ‘아, 저거구나!’나 했다. 스릴도 있고 물살을 가르며 나오는 포말이 그의 가슴을 흔들었다.

경정선수로 전업하기엔 경정선수였던 형 김민천(39·2기)의 도움이 컸다. 김민길은 “서울에 취직자리 구하러 다니는 데 형이 경정후보생 모집공고가 나왔다면 한번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모터모트대회 때 생각이 나 결심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경정선수가 되는 길은 험했다. 후보생에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두 번이나 연속해서 떨어졌다. 오기가 발동했다. 3전4기. 세 번 도전한 끝에 8기 후보생 시험에 합격했다. 2009년 정식 선수로 데뷔했다. 그리고 7년 만에 그랑프리포인트 쟁탈전이라는 큰 대회에서 2연패를 거머쥐었다.

김민길은 “아이고, 진짜 운이 좋았다. 여기 용어로 ‘아다리가 잘 맞았다’고 하는데 두 대회 연속 운이 좋았을 뿐이다” 거듭 말하고는 “앞으로 큰 욕심 부리지 않겠다. 그랑프리포인트를 쌓았으니 연말 그랑프리대상에 도전해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말했다.

교만하지 않고 익을수록 몸을 낮추는 김민길. 노력과 성실을 바탕으로 뒤늦게 화려한 꽃을 피웠다. 맞다. 그는 소리 없이 강한 선수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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