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의 마지막 퍼즐 지금까지 17번 출전…“평생의 한 될듯” “마지막까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한국여자골프의 레전드 박세리(38)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1998년부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생활을 시작한 그는 내년을 마지막으로 필드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한국에서 2년 그리고 미국에서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선수로 뛴 박세리는 은퇴 후 또 다른 골프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12일 박세리가 356번째 경기를 치렀다. LPGA투어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안겼던 LPGA 챔피언십(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 출전한 박세리를 현지에서 만나 두 번째 골프인생의 얘기를 들어봤다.
● “마지막까지 최선 다할 것”
올시즌 LPGA투어의 15번째 대회인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전신 맥도널드 챔피언십)은 박세리가 17년 전 처음 우승했던 바로 그 대회다. 올해부터 대회의 명칭만 바뀌었다. 박세리는 통산 25승을 거뒀고 메이저대회에서 5승을 차지했다. 그 중 3승(1998, 2002, 2006년)이 바로 이 대회에서 나왔다. 그러나 박세리는 전혀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솔직히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에서 처음 우승했을 때는 메이저 대회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우승하고 나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루키로 첫 우승을 차지했고 그것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다. 기분이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내가 우승한 대회가 메이저대회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17년 전 얘기지만 그도 어이가 없었던지 크게 웃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메이저대회라는 개념도 잘 모를 때였다. 그저 LPGA투어에서 우승했다고만 생각했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쉽게도 박세리는 이번 대회에서 1라운드 경기 후 부상으로 기권했다.
10년 이상 어린 후배들과의 경쟁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박세리는 경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뒤 은퇴하고 싶다”고 식지 않는 열정을 보였다.
“골프가 정말 좋다. 그러니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다. 또 후배들을 보면 부자가 된 것 같고 마음이 뿌듯해진다. 그래서 그런 후배들과 더 오래 같이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마지막까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지금도 마음은 신인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성적이 나지 않으면 속이 상하고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 “나비스코 우승할 때까지 나올 것”
통산 25승과 LPGA투어 명예의 전당 가입. 박세리는 골프선수로 이룰 수 있는 모든 목표를 이뤘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다. 박세리는 메이저대회에서 5승을 거뒀지만 아직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하지 못했다. 마지막 퍼즐 하나는 ANA인스퍼레이션이다.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은퇴까지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에 필요한 3번의 메이저대회가 남아 있다. 9월 열리는 에비앙 챔피언십과 내년 ANA인스퍼레이션(옛 나비스코 챔피언십) 그리고 에비앙 챔피언십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욕심을 내는 건 ANA인스퍼레이션이다.
LPGA투어의 메이저대회는 작년부터 5개로 늘었다. 박세리는 두 대회 중 하나만 우승해도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4개의 메이저대회로 운영되던 시기에 유독 자신을 괴롭혀온 ANA인스퍼레이션에 대해 더 큰 욕심을 내고 있다. 17번이나 출전했지만 2014년 공동 4위가 역대 최고 성적이다.
박세리는 “왜 미션힐스 골프장(나비스코 챔피언십이 열렸던 장소)에만 가면 잘 안 풀렸는지 모르겠다”면서 “내년에 은퇴를 하더라도 나비스코 챔피언십(ANA인스퍼레이션)은 우승할 때까지 출전할 것이다. 우승하지 못하고 끝나면 평생의 한이 될 것 같다”며 손에 쥐고 있던 물병을 손바닥에 내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