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에도 역전승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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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축구 월드컵 첫 16강]

한국 여자축구가 오래된 두 개의 꿈을 이뤘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18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E조 마지막 경기에서 유럽의 강호 스페인을 2-1로 꺾고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어우러져 기쁨의 눈물을 흘린 선수들은 라커룸에 들어가서도 울음과 웃음이 섞인 가운데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물세례 세리머니’로 월드컵 첫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브라질(승점 9)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오른 한국은 22일 프랑스와 8강 진출을 다툰다.

극적인 반전이었다. 전반 29분 선제골을 내주고 0-1로 뒤지던 한국은 후반 8분 조소현(인천 현대제철)의 동점골과 후반 33분 김수연(KSPO)의 그림 같은 역전골로 경기를 뒤집었다.

한국 여자축구가 이날 새 역사를 쓴 원동력엔 윤덕여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있다. 2012년 말 윤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내정됐을 때만 해도 걱정 어린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여자축구를 한번도 안 해본 데다 너무 착한 이미지가 선수들을 휘어잡을 수 없을 것이란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 감독은 선수들을 자신의 딸처럼 다정다감하게 대했다. 선수들도 윤 감독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2013년 대표팀 구성 때는 잉글랜드에서 활약하는 지소연(첼시 레이디스)과 박은선(로시얀카)에 2010년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우승 주역인 이금민(서울시청)과 이소담(대전 스포츠토토) 등 ‘황금세대’를 가세시키며 신구 조화를 꾀했다.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은 대표팀은 2013년 전지훈련을 하던 유럽 키프로스에서 국제대회에 참가하며 착실히 실력을 키웠다. 그러나 2014년 4월 여자 아시안컵에서 일본과 호주, 중국에 이어 4위를 하는 등 기대했던 성과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올 3월 우승을 목표로 출전한 키프로스 국제대회에서도 이탈리아(1-2)와 캐나다(0-1), 스코틀랜드(1-2)에 잇달아 패배하며 월드컵을 앞두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월드컵 출전을 코앞에 둔 지난달에는 공격수 여민지(대전)가 부상으로 이탈했다. 공격의 핵 박은선도 부상으로 이번 대회 조별리그 2차전까지 뛰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에는 스포츠과학에 바탕을 둔 훈련 프로그램이 큰 몫을 했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남자축구 월드컵 4강 신화를 쓰면서 보여준 ‘파워 프로그램’과 같은 송준섭 피지컬 트레이너의 체력 프로그램은 선수들의 체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 덕분에 선수들은 이번 대회 예선 3경기에서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쉼 없이 달릴 수 있었다.

지난달 18일 월드컵 출정식에서 선수들은 설움에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12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앞두고 부푼 꿈에 부풀어야 할 그들이 운 이유는 열악한 현실 때문이었다. 국내 남자축구팀은 610개인 반면 여자축구팀은 78개에 불과하다.

월드컵경기장에서 화려하게 치르는 남자 대표팀의 월드컵 출정식과 달리 카페에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에서 전가을(인천)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많이 노력했다. 모든 선수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지금 흘리는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던졌었다. 전가을만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남자 대표선수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대한축구협회가 제공한 국가대표 단복을 입고 월드컵에 나선 그들은 보란 듯이 자신들의 말을 지켰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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