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전 역전골 주인공 김수연
대회 직전 부상으로 줄곧 벤치… “처음엔 골이 아닌 줄 알았어요
중1 때 생애 첫 골도 슈터링… 부모님 잃고 키워주신 할머니
하늘에서 도와주신 것 같아”
브라질에 0-2로 졌을 때도, 코스타리카와 2-2로 비겼을 때도 김수연(26·KSPO·사진)은 경기 내내 벤치를 지켰다. 지난해 부상으로 고생을 하다 올해 힘겹게 대표팀에 선발됐지만 5일 미국 클럽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왼쪽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을 당한 게 문제였다. 같은 수비수 포지션에 김혜리(25·현대제철)라는 빼어난 선수가 버티고 있는 데다 부상까지 겹쳤기에 스스로도 출전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18일(한국 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E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 전반을 벤치에서 보낸 김수연에게 출전 지시가 떨어졌다. 양쪽 측면 공간을 스페인에 너무 쉽게 내줘 어려운 경기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 윤덕여 감독의 결정이었다. ‘단 1분만이라도 월드컵에서 뛰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은 그렇게 이뤄졌다.
김수연은 초등학교 때만 해도 태권도를 했다. 스피드, 순발력, 체력이 모두 좋은 김수연을 눈여겨보고 축구로 종목을 바꾸도록 한 사람이 현 소속팀인 KSPO의 강재순 감독(51)이다. 강 감독은 “남들보다 늦은 중학교(경포여중) 1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지만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중고교 때 직접 지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당시 강일여고 감독을 하며 가까이서 지켜봐 왔기에 잘 안다. 발이 빠르고 왼발, 오른발을 다 잘 쓴다. 책임감이 뛰어나 팀에서도 주장을 맡으며 공격, 수비를 도맡아 한다”면서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 출전했다면 큰 기여를 했을 텐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수연은 4월 13일 WK리그 대전과의 방문경기를 앞두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릴 때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과 언니, 여동생을 혼자서 키운 할머니였다. 황급히 강릉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상을 치른 그녀는 한동안 운동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4월 30일 대표팀 윤덕여 감독이 발표한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포함됐을 때 김수연은 언니 김수민 씨(35)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하늘에서 도와주는 것 같아.”
소원을 이룬 김수연은 죽을힘을 다해 그라운드를 누볐다. 극적인 기회는 후반 33분에 찾아왔다. 전가을(27·현대제철)의 패스를 받은 김수연은 빠른 발로 공을 몰다 오른쪽 페널티 라인 앞에서 크로스를 날렸다. 공격수 유영아(27·현대제철)를 보고 강하게 찬 공은 마치 누군가가 끌어당긴 듯 그대로 스페인 골대 왼쪽 그물에 꽂혔다. 한국 여자축구의 첫 승이자, 월드컵 16강을 이끈 기적 같은 한방이었다.
김수연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중학교 1학년 때 연습경기에서 처음 골을 넣었는데 ‘슈터링’이었다. 그때부터 친구들이 나를 ‘슈터링’이라고 불렀는데 월드컵에서까지 슈터링으로 골을 넣게 됐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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