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아빠 리더십? “교감으로 믿음 얻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6월 30일 05시 45분


윤덕여 감독(오른쪽 끝)은 23명의 태극낭자와 함께 2015캐나다여자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며 한국여자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높은 훈련 강도로 밀어붙이면서도, 마음을 여는 윤 감독의 감성리더십이 선수들을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밝은 여자축구의 미래를 기대케 한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윤덕여 감독(오른쪽 끝)은 23명의 태극낭자와 함께 2015캐나다여자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하며 한국여자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높은 훈련 강도로 밀어붙이면서도, 마음을 여는 윤 감독의 감성리더십이 선수들을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밝은 여자축구의 미래를 기대케 한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여자축구 16강 일군 윤덕여감독

캐나다월드컵 마치니 체중 4kg 빠졌더라
큰 무대라 몸 굳었지만 부담 내려놓자 펄펄
비록 졌지만 의지와 화합은 우리가 최고
WK리그 선수들 외롭다…팬들 관심 필요


2015년 6월 한국여자축구는 진정한 르네상스를 맞았다. 여자축구대표팀 ‘윤덕여호’는 캐나다여자월드컵에서 사상 첫 승과 함께 첫 16강 진출이란 새 역사를 썼다. 1954년 스위스대회에 처음 출전한 남자축구는 2002한일월드컵을 통해 첫 승과 첫 16강을 이루기까지 48년이 걸렸지만, 여자축구는 2003년 미국대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12년 만에 첫 승과 첫 16강 진출을 동시에 달성했다. ‘준비된 기적’을 쓴 태극낭자들은 선전의 원동력으로 한 사람을 꼽는다. 윤덕여(54) 감독이다. 선수 중 누군가는 윤 감독에 대해 “그동안 축구를 해오면서 나에게 가장 따뜻한 사랑을 준 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상호 신뢰가 두터웠다. 2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윤 감독을 만나 월드컵을 되돌아봤다.

● 우리의 월드컵

-코스타리카와 조별리그 2차전을 비기며 시나리오가 꼬였다.


“2-1로 리드하다 비겼다. 솔직히 졌을 때보다 훨씬 처진 분위기였다. 나와 코치들도 많이 허탈했지만, 선수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억지로나마 자꾸 웃으려 했다. 속은 답답했어도 일부러 미소를 지었다. 귀국 후 사우나에서 오랜만에 체중을 쟀더니 그동안 4kg이나 빠졌더라.”

-주축선수들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박)은선이와 (지)소연이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었다. (전)가을이, (심)서연이는 3월 키프로스컵 이후 계속 재활 중이었다. 그럼에도 뭔가 해주리란 믿음이 있었다. 이들은 몸을 만들기 위해 각자 방에서 별의별 운동을 다 했다. 모두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체했다. 다행스러운 건 엔트리가 정리된 이후 항상 단체운동을 해왔다는 거다. 동료들이 팀 훈련을 하는데, 따로 재활을 하고 있었다면 걱정이 컸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소집도, 실전 기회도 부족한데 대표팀 관리는 어떻게 했나.


“오래 전에 예비엔트리 35명을 정해놓고, 꾸준히 몸을 살폈다. 매 라운드 코칭스태프가 WK리그 현장을 찾아 여러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대표팀 의무진도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서 면밀히 점검했다.”

-아무래도 큰 무대 경험이 부족했는데.

“브라질과 조별리그 1차전 때 몸이 굳은 건 당연하다. 특히 (지)소연이는 여자축구의 무거운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는 심적 압박도 받고 있었다. 동행한 윤영길 박사가 큰 도움이 됐다. 부담을 내려놓자 비로소 우리 실력이 나올 수 있었다.”

-제자들은 ‘아빠 리더십’, ‘감성 리더십’을 얘기하더라.

“2012년 말 여자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변치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교감이다. 아무리 좋은 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좋은 이야기를 해도 서로의 믿음이 없으면 하나가 될 수 없다. 먼저 다가서려 했고, 마음을 열자 선수들도 날 받아줬다.”

● 우리의 여자축구

-일본, 중국, 호주 등 아시아권이 강세다. 우린 어떤가.


“의지, 화합은 최고였다고 자부한다. 출전 기회를 잡은 선수들과 벤치 멤버 모두가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주고 했다. 적응력은 좀더 키워야 할 것 같다. 아직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세계 흐름에 맞는 예방접종을 꾸준히 해야 한다.”

-여자축구계의 전폭적 지지는 없었다. 일부에선 곱지 않은 시선도 보냈다.


“숙명이었다. 지도자 생활 대부분을 프로에서 했다. 정통 여자축구인도 아니다. 다만 날 선임한 것에 대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고, 더 많은 현장을 찾았다. 지금껏 선수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소중했고, 행복하다.”

-여자축구는 17세, 20세 이하 월드컵 선전으로 얻은 2010년, 중흥의 기회를 아쉽게 놓쳤다.


“WK리그 환경은 나쁘지 않다. 외국선수들도 우리 선수들의 연봉 수준을 부러워한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외롭다’고 한다. 핵심은 관심이다. 이는 돈이 채워줄 수 없다. 연속성이 필요하다. 선수들의 의식도 높아져야 한다. 월드컵 준비과정에서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NFC) 훈련을 계속 찾는 취재진을 보며 ‘신경 쓰인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젠 그런 불편함조차 익숙함으로 바뀌어야 한다.”

-여자축구의 구조적 틀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여자축구 강국들을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 풀뿌리부터 유소년 육성, 성인리그까지 두루 살펴야 한다. 즐거워하며 땀 흘리는 선수를 이길 순 없다. 즐기는 축구를 어릴 적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좋은 풀뿌리 여자축구 지도자들이 많다. 진짜 박수 받을 사람들이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지.

“월드컵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끝났다. 다음 행보는 모르겠다. (연임 여부는) 대한축구협회와 상의를 해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는 윤 감독과 재계약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장 8월 동아시안컵이 있고, 내년 2월 일본에서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아시아 예선이 열린다. 더욱이 윤 감독은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값진 결실을 맺었다. 사령탑 교체 이유가 없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역시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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