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파란 눈’의 브락 라던스키(32·아이스하키 안양 한라)는 태극전사가 돼 빙판을 누비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그는 캐나다인이었다. ‘검은 피부’의 윌슨 로야니에 에루페(27·사진)도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도로 위를 달릴 수 있을까.
최근 한국 스포츠의 논쟁거리 중 하나는 케냐 출신의 에루페가 10번째 특별귀화자가 될 수 있는가다. 에루페는 올 3월 2015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6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뒤 “한국으로 귀화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귀화 준비를 하고 있다. 오주한(吳走韓)이라는 한국 이름도 지었다. 자신의 감독인 오창석 백석대 교수의 성을 땄고,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뜻으로 만든 이름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도 “에루페가 귀화하면 1992년 황영조의 금메달과 1996년 이봉주의 은메달 이후 끊긴 올림픽 메달을 노려 볼 수 있다”며 그의 귀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에루페는 2012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5분37초의 개인 최고기록으로 1위를 차지한 뒤 올 서울국제마라톤까지 국내에서 열린 4개 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했다. 그가 올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6분11초의 기록은 올 시즌 세계 랭킹 9위다. 한국 마라톤 최고기록은 2시간7분20초로 15년째 그대로다. ▼ 국적 벽에 막혀 포기한 국가대표 꿈, 귀화한 아들이 이뤄 ▼
하지만 에루페의 귀화에 반대하는 일부 여론도 있다. ‘바르셀로나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마라톤은 우리 민족혼이 짙은 종목이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귀화하면 모든 대회를 휩쓸고 다닐 텐데 이는 한국 마라톤의 중흥이 아니라 말살 정책이 될 것이다. 기록만 놓고 봐도 에루페만 한 선수는 국제무대에 널려 있다. 연맹이 기대하는 올림픽 메달은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특별귀화자로 복수 국적을 갖게 된 라던스키와는 다른 양상이다. 아이스하키협회가 2013년 라던스키의 특별귀화를 요청하자 대한체육회는 “5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통해 한국 문화에 충분히 적응했고,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고자 하는 강한 의욕 등을 고려해 법무부에 복수국적 취득을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귀화에 반대하는 여론도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은 다문화 국가다. 지난해 기준 외국인 주민(90일 이상 체류자 포함)은 약 157만 명으로 전체 인구(약 5114만 명)의 3.1%다. 이 가운데 국적을 바꾼 귀화자는 약 29만 명이다. 그들의 자녀까지 합치면 그 수는 약 50만 명으로 늘어난다. 국민 100명 가운데 1명이 다문화 가족인 셈이다.
귀화자 중에는 한국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이 있다.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물러나긴 했지만 독일 출신으로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이참 알앤씨바이오 사장(61)이 대표적이다. 방송인으로 더 유명한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57) 광주외국인학교 이사장도 그중 한 명이다. 필리핀 출신의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38)은 방송과 영화 출연으로 얼굴을 알리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59)도 한일 관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귀화자다. 이 밖에도 각계에 귀화 외국인이 있지만 귀화를 통해 ‘코리안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분야는 스포츠다. 대부분의 귀화자들이 겪게 되는 ‘언어의 장벽’이 운동선수들에게는 그리 높지 않다. 몸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포츠 선수들의 귀화는 정부가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다. “국제대회 한국의 국위 선양을 위해”
한국농구연맹(KBL)은 6월 30일 2015∼2016시즌 선수 등록을 마감하면서 선수들의 보수(연봉+인센티브)를 공개했다. 최고 보수 선수는 삼성 문태영(37)으로 8억3000만 원(연봉 7억4700만 원+인센티브 8300만 원)을 받는다. 나이 탓에 올해 팀을 옮겨 오리온스와 3억8500만 원에 사인했지만 LG에서 뛰던 2013∼2014시즌 6억8000만 원을 받는 등 2년 연속 국내 프로농구 ‘연봉 킹’을 차지했던 문태종(40)은 문태영의 친형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는 2011년 국적법 개정으로 ‘체육 분야 우수인재 특별귀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귀화했다. ‘우수인재’는 학술·과학, 문화·체육, 경영·무역, 첨단기술 등으로 체육 분야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 제도 덕분에 운동선수들의 귀화 절차는 간편해졌다. 대한체육회장의 추천을 받아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 된다. 일반 귀화와 달리 의무 거주 기한이나 필기시험이 필요 없다.
문태종, 태영 형제가 2011년 6월 8일 심의를 통과한 이후 대한체육회가 체육 분야 우수인재 특별귀화자로 선정한 사람은 지금까지 9명이다. 아이스하키 선수가 5명으로 가장 많고, 농구 선수 3명, 빙상(쇼트트랙) 선수 1명이다. 문태종과 문태영의 추천 사유는 ‘올림픽·아시아경기 대비 대표팀 경기력 강화’였다. 문태종은 지난해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에 선발돼 우승을 이끌며 돈은 물론이고 명예까지 얻었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계주에서 한국의 우승을 합작한 공상정(19)은 2011년 9월 29일 심의를 통과해 한국 국적을 얻었고, 귀화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상정의 추천 사유는 ‘겨울올림픽 우수성적 국위 선양’이었다. 캐나다 출신의 라던스키 등 아이스하키 선수 5명의 추천 사유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 우수성적 향상 기대’다. 아이스하키 불모지인 한국이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나갈 수 있는 평창 올림픽을 유치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특별귀화자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을 것이다.
특별귀화자 이전에도 귀화 선수는 많았다. 프로배구 한국전력에서 뛰고 있는 후인정(41)은 21년 전인 1994년 귀화해 이듬해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후인정은 화교 3세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였지만 화교 2세로 귀화하지 않아 태극마크를 달 수 없었던 아버지 후국기 씨가 아들에게 적극적으로 귀화를 권유했다.
탁구는 귀화 선수가 많은 대표적인 종목이다. 탁구 저변이 넓은 중국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을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곽방방, 당예서, 전지희, 정상은 등이 귀화를 했고, 당예서(34·대한항공)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귀화 선수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남겼다.
최근에는 프로농구(남자)에서 귀화 바람이 거셌다. KBL이 2009∼2010시즌부터 ‘귀화 혼혈(하프 코리안) 선수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현재는 폐지). 친부모 중 1명이 한국인 혈통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거나 이전에 보유했으면 대상자가 됐다. 문태영이 전태풍(KCC), 이승준(SK) 등 다른 귀화 혼혈 선수들과 함께 국내 프로팀에서 뛴 것이 이때부터다. 동생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문태종은 다음 시즌부터 한국에서 활약했다. 2011년 이전만 해도 국적이 미국이라 국가대표는 될 수 없었다. 오일 머니 앞세운 카타르의 ‘선수 수입’
지난해 인천 아시아경기 육상 남자 100m에서는 9초93의 아시아기록이 나왔다. 카타르의 페미 오구노데가 주인공이었다. 2위 중국의 쑤빙톈(10초10)보다 0.17초나 빨랐다. 오구노데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흑인이다. 2009년 카타르로 귀화한 그는 이듬해 광저우 아시아경기 200m와 400m에서 우승하며 카타르의 종합순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가 인천에서 갈아 치운 이전 아시아기록(9초99)은 카타르의 새뮤얼 프랜시스가 세웠는데 그 역시 나이지리아 출신이다. 인천 아시아경기 육상에 걸린 47개의 금메달 가운데 15개를 아프리카 출신이 가져갔다. 육상 트랙만큼은 아시아경기가 아니라 아프리카경기였다.
카타르는 50년 전만 해도 수도 도하의 인구가 2만여 명에 불과하고 3층짜리 빌딩도 없던 곳이었다. 지금은 인구 약 190만 명에 1인당 국민소득이 8만1603달러(2015년 기준·세계 2위)나 되는 세계적인 부국이다. 매장량이 세계 최대 규모인 천연가스와 석유가 부의 원동력이다. 카타르가 국가적인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스포츠다. 이미 2006년 아시아경기를 개최했고, 2022년 월드컵까지 유치했다. ‘오일 머니’를 쏟아 부어 사막에 각종 ‘하드웨어(경기시설)’를 건설하고 있는 카타르는 ‘소프트웨어’에도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외국 선수들을 귀화시켜 스포츠 강국으로의 도약을 노린 것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육상 남자 1500m에서 동메달을 따 카타르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무함마드 술레이만은 소말리아 출신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금메달리스트이자 남자 3000m 장애물경기 세계기록 보유자인 사이프 사이드 샤힌은 케냐에서 귀화했다. 지난해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우승한 핸드볼 대표팀은 15명 중 12명이 귀화자였다. 귀화 이전 국적도 프랑스, 몬테네그로, 스페인, 쿠바 등 다양하다. 센터백인 베르트랑 루아네는 4년 전만 해도 프랑스 핸드볼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던 선수다. 사격 남자 센터파이어 권총에서 우승한 카타르의 올레크 옌가체프는 러시아 출신이다. 카타르는 귀화 선수에게 고급 아파트와 10억 원 안팎의 연봉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경쟁유발 효과” “토종 마라톤 죽이기”… 에루페 딜레마 ▼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카타르의 귀화 선수가 잇달아 메달을 따자 한 외신 기자는 공식 브리핑에서 “귀화 선수들이 대회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관계자는 “3년 이상 그 나라 거주 요건만 채우면 문제가 없다. 외국인 선수를 적극 유치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돈으로 국적을 바꾸는 행위를 인정해 준 것이다.
카타르는 아랍,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사회 각 분야에서는 유럽 국가 출신들이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귀화자에게 이질감을 덜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다. 수천 년 동안 고유한 문화를 지켜온 한국 등 동양권 국가와는 배경이 다르다.
‘단일민족’ ‘한겨레’를 강조해 온 대한민국도 피부색이 다르고 파란 눈을 가졌어도 ‘한국계’라면 인정한다. 미국이 국적인 여자 골프선수의 우승도 ‘한국계’ 성적으로 포함시킬 정도다. 귀화를 전제로 한국에 와서 코트를 누빈 프로농구 귀화 혼혈 선수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것도 그래서다. 이승준, 동준 형제와 김민수, 박승리 등 귀화 혼혈 선수를 4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SK의 문경은 감독은 “이들은 정말 농구가 좋아서 즐기다 선수가 됐기 때문에 합숙 등 ‘한국형 훈련 방식’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운동 능력이 워낙 뛰어나다. 같은 키라도 토종 한국인보다 탄력이 훨씬 좋다. 그런 거부감에 대해 잘 설득하면 팀 전력에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머리싸움은 인종과 관계없지만 몸으로 싸우는 스포츠는 다르다. 중국의 류샹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허들 110m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 “동양인은 절대 올림픽 육상 단거리에서 우승할 수 없다”는 말은 진리로 통했다. 달리기 등 트랙은 흑인들이 절대 강자이지만 투척 종목은 백인이 주름잡는다. 특히 선천적으로 상체 근육이 발달한 유럽 선수들이 강세다. 투척 종목의 하나인 해머던지기에서 아시아 선수로 금메달을 딴 유일한 선수가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정상에 오른 일본의 무로후시 고지다. 하지만 무로후시는 동양인이라고 부르기가 모호하다. 어머니가 루마니아 출신이기 때문이다. 고지의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같은 종목에서 아시아경기 5연패를 달성했던 일본의 육상 영웅. 하지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본선 진출도 어려웠다. 좌절한 그는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식에게 기대하면서 루마니아 창던지기 국가대표 출신과 결혼했다. 딸 유카도 오빠 고지만큼은 아니어도 해머던지기 일본 대표를 지냈다. 자식 2명 모두 일본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체격 조건은 일본인이 아니었다.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자녀를 얻은 뒤 이혼했다. ‘경쟁력 향상’ vs ‘토종 죽이기’
지금까지 나온 체육 분야 우수인재 특별귀화자 9명 가운데 농구 3명은 ‘하프 코리안’이다. 프로농구의 사례에서 보듯 외모는 조금 달라도 별다른 논란 없이 한국인으로 인정받는다. 빙상 쇼트트랙의 공상정은 화교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국적만 다르지 ‘한국사람’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여자 아이스하키 박은정은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다. 반면 남자 아이스하키 4명은 한국인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 그중 라던스키는 ‘파란 눈의 태극전사 1호’로 불린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하부리그 출신인 그는 2008년 한라 유니폼을 입으며 한국 땅을 밟은 뒤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케냐 출신 마라토너 에루페도 라던스키처럼 특별귀화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소속 팀부터 알아봤고 지난달 충남 청양군청에 입단했다. 국내 팀 소속으로 활동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특별귀화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귀화 인정과는 별개로 규정상의 문제도 지적된다. 에루페는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2012년 말 국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아 올해 1월에 복귀했다. 따라서 ‘징계 해지 후 3년이 지나야 대표 선수로 뛸 수 있다’는 지금의 대한체육회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과거 말라리아 예방주사를 맞은 게 문제가 됐다.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면 2년 만에 이런 기록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라며 엄격한 규정 적용을 경계했다.
아이스하키에서 5명이나 특별귀화자가 나온 것은 토종 한국인의 신체조건으로는 경쟁이 어려워서다. 남자 농구와 배구가 꽤 오래전부터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없게 된 것도 신체조건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귀화를 찬성하는 쪽은 ‘메기 효과’를 내세운다. 미꾸라지만 있는 어항에 메기 한 마리만 풀어 놔도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더 강해지듯이 우수한 귀화 선수들과 경쟁하다 보면 토종 선수들의 기량도 향상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올림픽처럼 중요한 국제대회를 앞두고 급하게 귀화를 추진하면 ‘돈을 주고 메달을 산다’는 비난 여론이 커질 가능성이 많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귀화 자체는 반대할 수 없지만 귀화 선수의 대표팀 선발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농구 SK 문경은 감독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귀화 선수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이질감이 덜한 ‘하프 코리안’이라면 적극 발굴해야 한다. 하지만 카타르처럼 모든 선수를 사실상 ‘수입’해 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국 농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검은 황영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쌍기의 병이 낫자 광종은 후주(後周)에 요청해 그를 귀화시켰다. 한 해도 지나기 전에 문병(文柄·문치의 권력)을 맡기니 당시 여론이 불만스러워하였다.”(고려사절요 권2)
후주의 사절로 고려에 왔다 정착한 쌍기는 958년(광종 9년)에 과거제도를 만드는 등 고려의 기틀을 다졌다. 쌍기가 최초의 귀화인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귀화인으로 큰 업적을 세운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고려는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구 중 귀화인이 17만 명(약 8.5%)에 달했던 다문화 국가였다. 2015년 대한민국의 귀화인구 비율보다 높다.
1000년 전 다문화 국가 고려의 여론도 귀화인이 권력을 얻는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이에 비해 2013년 백인 아이스하키 선수 라던스키가 특별귀화자가 됐을 때는 반대 여론이 거의 없었다. 에루페에 대한 비난 여론은 그가 흑인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마라톤이 ‘민족 종목’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지난해 소치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을 꺾고 우승하며 ‘러시아의 영웅’이 된 안현수나 한국에서 ‘왕따’를 당해 일본 국적을 선택한 유도 선수 출신 추성훈은 조국을 배신한 것일까. 세월이 흘러 귀화한 아프리카 마라톤 선수가 한국 여성과 결혼해 낳은 혈통상의 ‘하프 코리안’이 올림픽에 나가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정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한국으로 귀화하는 스포츠 선수는 계속 늘어난다는 점이다. 귀화는 부와 명예를 노리는 선수 개인과 국제대회 메달을 목표로 하는 국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육상 100m 아시아기록을 갖고 있는 오구노데는 이렇게 말했다. “승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한다.” 당신은 이 말에 동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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